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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15 (월)

정영희의 건강한 행복

침묵이 건네는 위로


멀리서 녹색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다. 추위를 피해 뛰어가려던 내 발자국은 멈추어지고, 느린 걸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선다. 다시 움직임을 허락할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길 기다리며 잠시 상념에 젖어본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사람들이 신호를 기다리며 걷기도, 뛰기도 때로는 멈추기도 하는 도로 위 신호등, 우리의 인생 역시 어쩌면 보이지 않는 신호에 기다리고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념의 끝에 어느 후배의 이야기가 남겨져 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후배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근무 중 예상치 못한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나 역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던 일상의 시작이 순간 무너져 내렸을 그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나 아려왔다.

 

이별은 늘 우리에게 아픔을 가져다준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이별이라면 그 상처는 너무나 오랜 시간, 깊은 흔적을 남긴다.

 

추운 날씨,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혼자 슬퍼할 후배를 생각하며 한걸음에 장례식장을 찾았다. 며칠 만에 수척해 버린 얼굴, 아직 미혼, 외동딸로 곱게 자란 그녀라 장례식장에 혼자였지만 생각보다 잘 이겨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따스한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혹여나 나의 말로 또 다른 아픔을 주진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병환으로 돌아가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그 시절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건 함께 했던 형제 덕분인 듯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에게 힘이 되었던 건 주변에서 건네는 위로의 말이 아니었다.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그 믿음이 힘든 시간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이다.

 

누군가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말없이 안아주는 것, 조용히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비록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더라도 슬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가끔은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큰 슬픔 앞에서는 위로의 말들이 잘 흡수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섣부른 위로의 말이 오히려 슬픔을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별 후 남겨진 이들에게는 어김없이 힘든 시간이 주어진다. 다시 볼 수 없다는 그리움과 좀 더 잘하지 못했던 후회의 시간 말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떤 고통이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 흔적이 희미해지는 시간이 온다는 것이다. 모든 감정은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기 마련이다.

다만 괴로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좀 더 빨리 빠져나올 방법은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는 것이다.

 

시련 속에서도 인간은 혼자가 아님을 알 때, 상처는 비교적 빨리 치유될 수 있다.

 

돌아오는 길.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찬 바람이 목도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정도로 바람이 매섭다. 역까지 가는 택시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어서 추운 겨울이 지나 후배의 마음에도 따뜻한 봄날이 오길…. 다시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길….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