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9 (월)

직선만이 최선인가?

나는 왜 인턴을 그만두고 회사원이 되었나


나는 고등학생 때 내 진로를 스스로 정했다. 수의사였다. 내 천직일 거라 생각했고 확신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운 좋게 수의대에 입학했고, 졸업 후 동물병원 인턴으로 취직했다. 자신만만하게 들어간 병원, 앞으로 탄탄대로일 것 같은 내 길. 현실은 달랐다.

 

매일 원장님에게 꾸중 받기 일쑤였다. 비수의사인 직원보다 일 처리가 늦고 미숙했다. 서투르고 실수투성이였다. 예컨대 검사를 위한 보정을 잘하지 못해 반려동물이 움직여 검사가 지체되기도 했고, 약을 각 포마다 고르게 배분하지 못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나름 공부도 열심히 했고 자신감도 있었던 터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 내가 고작 이 정도였나. 자괴감과 수치심마저 들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지하까지 뚫고 내려갔다.

 

급기야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천직은 무슨,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난 이 일에 소질도 재능도 없구나. 결국 1년도 채 안 되어 병원을 그만뒀다. 그렇게 나는 어느 제약회사의 회사원이 되었다.

 

그런데 회사원의 삶은 내 길이었을까? 그것도 아니었다. 나름 안정적이긴 했지만 여전히 '이게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나는 다시 동물병원으로 돌아왔다. 한 바퀴 돌아서 제자리로 온 셈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당시엔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둘러서 온 시간이 아깝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회사 생활 이야기는 언젠가 다른 칼럼에서 따로 다루겠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실수와 서투름을 감당하지 못했다. 인정하지 못했다. 인턴이란 어떤 사람인가. 숙련자처럼 능수능란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인가. 결코 아니다. 일을 막 시작한 사람은 서투른 게 당연하다. 물론 시작하자마자 빠릿빠릿하게 해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적응 기간이 필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수개월에서 1년은 족히 걸린다. 누구나 초보 시절에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걸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 자존심 문제였던 건지,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나의 이유만은 아니었을 거다. 어쨌든 그것들이 다 맞물려 나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이 일은 내 길이 아니다'라고.

 

절대적인 기준은 없지만 그래도 최소 1년은 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다. 이 길이 맞는지,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때 결정해도 충분하다. 1년이란 기간을 아끼려다 자칫 10년, 20년을 허비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마라.

 

지금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면 자신을 너무 의심하지 말자. 설령 그 일이 내가 원하던 일이 아닐지라도, 지금 당장 아무 쓸모 없어 보일지라도. 내가 살아보니 무용한 경험, 무의미한 경험은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커넥팅 더 닷츠(Connecting the Dots)'처럼, 모든 점은 결국 선을 만드는 데 쓰인다. 점 하나만 빠져도 선은 완성되지 못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 점 하나일 수 있다. 지금은 왜 여기 서 있는지 모르겠더라도, 언젠가 돌아봤을 때 그 시간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위한 마중물이었음을 알게 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을 그만두려 할 때, 단번에 결정하기보다 잠시 숙성의 기간을 가져보자.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해도 좋고, 이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도 좋다. 거리를 두고 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 최종 결정은 그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박근필

 

* 수의사
* 작가,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 박근필성장연구소 소장

* 청소년 진로 직업 특강 외 다수 출강
* 데일리벳 외 다수 매체 칼럼 연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2023)
-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2024)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2025)
-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 (2025, 공저)


[참고 링크]

부산 시청 주최 공무원 대상 특강

김해 청소년 진로 멘토링

인천 계양중학교 강연

 

 

[대한민국교육신문]







인물·기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