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의사이자 글 쓰는 사람이다.
수의사로 살다 보면 낯선 케이스를 자주 만난다. 처음 해보는 시술, 익숙지 않은 증상, 예상과 다른 반응. 처음엔 손이 떨린다. 두 번째엔 조금 덜 떨린다. 세 번째엔 요령이 생긴다. 그렇게 실력이 쌓인다. 시행착오가 곧 성장이다. 실패 없이 실력이 늘 수는 없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작가로서 항상 좋은 글을 쓸 순 없다. 특히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더 그랬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 형편없다 싶은 글도 수없이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알았다. 내 글이 구려 보인다는 건, 더 나은 글이 어떤 것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는 걸. 그 불만족이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올리는 신호였다. 쓰지 않았다면 나아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때 필요했던 게 바로 이 정신이었다.
지금 소개할 두 글자.
Not Yet.
스탠퍼드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는 성장 마인드셋 연구에서 미국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소개한다. 그 학교는 낙제 점수를 'F(Failed)'가 아닌 'NY(Not Yet)'로 표기한다고 한다. '실패'가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다. 두 글자의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완전히 다르다.
'F'는 결론이다. 끝이다. 낙인이다. 한번 실패하면 실패자가 되는 구조다.
'NY'는 과정이다. 아직이라는 말 속엔 '다음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충분한 점수에 아직 닿지 못했을 뿐, 기회는 남아 있다. 다시 도전하면 된다.
이 두 가지 관점은 삶을 대하는 태도 전체를 바꿔 놓는다.
그렇다면 진짜 실패는 무엇일까.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결과가 나쁠 것 같아 처음부터 시도를 않는 것. 그게 진짜 실패다.
더 나아가, 실패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시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안전한 곳에만 머물렀다는 뜻이다. 익숙한 것 안에만 있었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발전도, 성장도 없다. 정체되거나 도태될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가장 무서운 실패는 실패가 전혀 없는 삶이다.
토머스 에디슨은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수없이 실패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성공하지 못하는 수많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실패를 결론이 아닌 정보로 본 것이다. 데이터로 삼은 것이다. 매 실패마다 하나씩 방법을 지워나간 끝에 결국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실리콘밸리엔 이런 말이 있다.
"빠르게 실패하고, 더 빠르게 배워라(Fail fast, learn faster)." 실패를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속도를 높여야 할 것으로 본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조직은 혁신을 낳지 못한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성장을 멈춘 사람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다.
시험 한 번 망치면 루저 취급받는다. 사업 한 번 실패하면 낙오자 소리를 듣는다. 이 문화가 사람들을 도전 앞에 주저하게 만든다. 실패가 두려운 게 아니라 실패 후 쏟아지는 시선이 두려운 것이다. 낙인이 두려운 것이다.
교육 현장도 다르지 않다.
틀린 답을 수치로 여기는 교실, 오답을 창피하게 만드는 분위기에선 아이들이 도전하지 않는다. '맞힐 것 같은 것'만 대답하고, '틀릴 것 같은 것'은 입을 닫는다. 그렇게 질문도, 시도도 사라진다. 성장도 함께 사라진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녀가 좌절하거나 실패하는 것을 보는 건 부모에게 고통이다. 그래서 미리 막으려 한다. 그런데 회복탄력성은 실패를 막아준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실패를 겪어내는 과정에서 생긴다. 실패 경험 없이 자란 아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작은 난관에도 쉽게 무너진다.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실패 후 쉽게 재기하고 회복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실패를 낙인이 아닌 과정으로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전환은 가정과 교실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틀렸을 때 "왜 틀렸어"가 아니라 "괜찮아, 어디서 막혔어?"라고 묻는 것. 그 질문 하나가 아이를 F의 세계에서 NY의 세계로 데려간다.
최근 좋지 않은 결과를 얻었는가.
기대보다 못한 성과에 낙담했는가.
괜찮다. 실패가 아니다. 아직 닿지 못했을 뿐이다.
F가 아니라 NY다. Not Yet.

그로쓰 퍼실리테이터 박근필
· 수의사
· 작가, 칼럼니스트, 커리어 스토리텔러
· 박근필성장연구소 소장
· 청소년 진로 직업 특강 외 다수 출강
· 데일리벳 외 다수 매체 칼럼 연재
[저서]
· 할퀴고 물려도 나는 수의사니까 (2023)
· 나는 매일 두 번 출근합니다 (2024)
· 마흔 더 늦기 전에 생각의 틀을 리셋하라 (2025)
· 방구석에서 혼자 읽는 직업 토크쇼 (2025, 공저)
[참고 링크]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