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한때 인천형 혁신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당시 혁신학교들의 유행처럼 ‘배움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 즉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의 연구학교로서 시범 운영되고 있었다. 교원과 학생회 소속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순번을 짜서 매일 아침 등교 맞이부터 상호 간에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는 학교 운영이 핵심이었다. 우리 말에 “시작이 반이다”라고 하듯이 아침부터 즐겁게 웃고 시작하는 얼굴에 소위 행운의 여신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하여 전반적으로 수년 간의 근무 기간 동안에 학교생활 자체가 다른 학교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즐겁고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학부모 간에 우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웃고 즐기면서 다양한 교육활동에 학생들과 교원의 교육력이 분산되면 학과 공부는 언제하고 학력 향상은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학생부에 기록된 다양한 교육활동과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학생활동 등으로 개교 이래 실로 오랜만에 서울대 수시전형인 ‘지역 균형’에서 첫 합격자를 배출했으며 인(in)서울 대학에도 다수의 수시 합격자를 배출하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는 “즐거운 배움=학력 저하”라는 오해와 왜곡을 불식시킨 증거였다.
사실 입시에서의 성취 이면에는 목소리 큰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는 학교가 너무 즐겁대요. 그런데 성적표를 보면 한숨이 납니다.”라는 모순적 고백이 실존하는 경향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의 경험상으로 학생 중심의 창의적 교육과정, 토론과 협력이 살아있는 교실은 분명 학생들과 교사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졸업생들은 학교를 찾아와 당시를 회상하며 학교생활이 참 만족스러웠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행복이 커질수록 일부 학부모들의 불안도 깊어졌음을 밝힌다. 여기엔 '배움이 즐거우면 학력은 떨어진다'는 해묵은 이분법적 논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소위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사상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만이 학습의 진리로 간주하고, ‘4당 5락’ 즉, ‘4시간 자고 공부하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근거 없는 전설적인 학습 방식만을 성공의 등식으로 간주하는 뿌리 깊은 옛 학습관에서 유래한다.
우리는 이제 차가운 머리로 질문해야 한다. 과연 즐거운 배움과 탄탄한 학력은 정말 반비례의 함수인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대개 '학력'을 바라보는 좁은 시각에서 시작된다. 과거의 학력이 주입식으로 단순히 지식을 암기하고 사지선다형 문제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인지적 숙련도'였다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학력은 전혀 다른 층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의 교육 방식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 즉, ‘현재를 잡아라(즐겨라)’는 사고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OECD가 제시한 'Education 2030' 프레임워크에 따르면, 미래 학력의 핵심은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ies)'이다. 이는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갈등을 조절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능력을 말한다. 혁신학교가 추구했던 '배움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역량을 키우기 위한 필수적인 토양이다. 단순히 교과서 내용을 열심히 외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학력이 저하되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마치 축구 선수가 체력 훈련 대신 전술 토론을 자주 한다고 해서 실력이 줄었다고 비난하는 것과 같다.
현대의 뇌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즐거운 배움'과 '학업 성취'는 정비례한다. 인간의 뇌에서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는 감정을 조절하는 편도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학습자가 불안하거나 압박감을 느낄 때보다 즐거움과 호기심을 느낄 때,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되며 인지적 가소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교육 사례는 이를 증명한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수업 시간이 가장 적고 숙제도 거의 없으며, 경쟁보다는 협력과 놀이 중심의 수업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 늘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배움의 주도권'이 학생에게 있고,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기에 학습 효율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억지로 앉아 10시간 공부하는 아이보다, 즐겁게 몰입하는 1시간의 아이가 더 깊은 학력(Deep Learning)을 얻는다는 것은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한국에서는 “즐거운 학교 = 학력 저하”라는 인식이 팽배할까? 여기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첫째, 평가 방식의 지체다. 학교 현장은 창의와 협력을 가르치는데, 대입 수능은 여전히 상대평가와 표준화된 시험에 머물러 있다. 교육과정은 21세기인데 평가는 20세기에 머물러 있으니, 학교에서 즐겁게 토론한 아이가 수능 문제풀이 기술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 '즐거움'에 대한 오해다.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은 '단순한 재미(Fun)'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사고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는 '지적 희열(Flow)'에서 나온다. 만약 교육 현장에서 체계적인 지식 습득 과정을 생략한 채 흥미 위주의 활동에만 치중했다면, 그것은 '즐거운 배움'이 아니라 '배움 없는 즐거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학부모들의 비판은 바로 이런 사실에만 매몰되어 있다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즐거움과 학력을 대립시키는 소모적 논쟁을 끝내야 한다. 진정으로 일을 잘하는 교육청과 학교라면, '배움이 즐거우면서도 결과가 확실한'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에는 첫째, IB(국제 바칼로레아)식 논술형 평가의 확산이 필요하다.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에세이를 쓰며 즐겁게 탐구하되, 그 결과가 엄격한 기준에 의해 평가받는 시스템을 공교육에 안착시켜야 한다. '즐거움'이 곧 '탁월함'으로 이어짐을 입증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 데이터 기반의 기초학력 보장이 필요하다. 학생 중심 수업을 진행하되, 인공지능(AI) 코스웨어를 활용해 개별 학생의 지식 결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보완해야 한다. “즐겁게 놀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학부모의 의구심을 객관적인 성장 데이터로 불식시켜야 한다. 셋째, 학부모와의 철학적 공유가 요구된다. 교육의 목표가 단순히 '점수'가 아니라 아이의 '삶의 역량'임을 끊임없이 소통하고,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성과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토마스가 예수의 상처를 만져보고 믿음을 확신했듯, 우리 학부모들도 공교육이 만들어낸 '즐거운 인재'들의 사례를 직접 확인할 때 비로소 안심할 것이다. 배움이 즐거운 학교는 학력과 반비례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거움은 학력이라는 집을 짓기 위한 가장 단단한 주춧돌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공부를 '버티는' 아이가 아니라 공부를 '즐기는' 아이다. 이제 우리 교육은 아이들에게서 웃음을 뺏어 성적을 올리는 잔인한 효율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즐겁게 몰입하고, 뜨겁게 토론하며,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이 결국 더 높은 학력의 고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공교육의 현장에서 증명해 내야 한다. 배움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 그곳이야말로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강력한 학력으로 무장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베이스캠프가 될 것이라 믿는다.

▲ 전재학 칼럼니스트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교육학 석사
· 인천과학고 외 7개교 영어교사
· 제물포고등학교, 인천세원고 교감
· 인천 산곡남중 교장
· 교육평론, 교육과사색, 전문위원
· 주간교육신문, 교육연합신문 외 교육칼럼니스트 활동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