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17 (금)

명예(名譽)와 수신(修身)

이정암은 (1541중종 36)~(1600선조 33) 조선 중기에 살았던 문신이다.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태롭게 되자 황해도로 들어가 의병을 일으켰다. 5백의 병졸을 거느리고 왜장 구로다[黑田長政]가 이끄는 3천 명의 군사를 황해도 연안(延安)에서 대파하여 왜군의 북진을 저지하고 해서(海西)지방을 안전하게 확보했고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의주에 있던 행재소(行在所)와 기호지방은 강화(江華)와 연안을 통하여 연결됨으로써 전쟁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었다.

 

이때 이정암은 섶을 쌓고 그 위에 앉아 싸움을 지휘했다고 한다. 성이 함락되면 스스로 불에 타 죽을 결심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장졸이 합심하여 나흘간을 죽기 살기로 싸웠고 적은 반 이상이 죽거나 부상을 입은 채 떠났다. 이정암은 곧 바로 장계를 올렸다. “신은 삼가 아룁니다. 적이 아무 날에 성을 포위하였다가 아무 날에 포위를 풀고 떠나갔나이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얼마나 큰 전과를 거두었는지 일체 자랑을 하지 않았다. 부하의 공을 가로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김육(1580-1658)은 <해동명신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적을 물리치기는 쉽다. 공을 자랑하지 않기가 더욱 어렵다.”

 

좁쌀 만 한 공을 부풀리고 그것을 빙자하여 으스대고 눈쌀을 찌푸리게 하며 그 조그만 공마저도 까먹고 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이정암은 훌륭한 사람이 틀림없다. 공자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염려하라고 했다(子曰 不患人之不己知患不知人也) 공은 내가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알아주는 것이다.

 

제 나라 경공에게는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고 괴물을 퇴치하며 일기당천(一騎當千)하는 세 명의 장수가 있었다. 공손첩과 고야자와 전개강이 그들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라가 건재할 수 있었으나 반면에 그들의 방자함과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경공에게는 그들을 제어할만한 힘이 없었다. 보다 못한 재상 안영((晏嬰 평중)이 그들을 제거할 결심을 한다. 어느 날 노나라 임금을 초대한 잔치 자리에 커다란 복숭아 여섯 개를 가지고 와 왕과 재상들에게 주고 두 개만을 남긴 다음 스스로 공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와서 그것을 취하도록 공고했다. 이 때 그 세 사람 중 공손첩이 나와 자신의 공을 자랑하면서 한 개를 취하고 뒤이어 고야자가 나와 나머지 한 개를 취했다. 홀로 남은 전개강은 자신이 공이 가장 큼에도 모욕을 당했다고 자신의 칼로 목을 찔러 자결을 했고 그러자 앞선 두 사람도 각각 자신들의 행위가 부끄럽다며 차례로 자결을 해 버렸다.

 

‘복숭아 두 개로 세 장수를 죽이다.’는 뜻의 ‘이도살삼사’는 '제갈 량(諸葛亮)'의 《양보음(梁甫吟)》이라는 고체시(古體詩)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백의 입을 통하여 더욱 유명해 졌는데 재상 안영의 지혜로움을 말하는데 사용되기도 하고 그의 간교함을 말하는데 쓰이기도 하나 어리석은 질투심을 경계하는데도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제나라의 재상은 힘이 남산을 갈아엎는 세 명의 장사를 죽이는데, 두 개의 복숭아를 사용하였다.” [力排南山三壯士 齊相殺之費二桃] -이백(李白)-

 

어쨌거나 재상 안영의 지혜가 탄복 할 만하거니와 설사 그의 지혜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세 장수가 공명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던들 그의 계책은 성공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다.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의 용사라 하는 자들도 하찮은 복숭아 두 개에 넘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한 편 장자(莊子) 칙양편(則陽篇)에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의 싸움'이란 뜻으로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수십만 수백만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지상 전쟁도 달팽이 뿔 위의 싸움처럼 무의미하다는 의미의 고사성어이다. 하물며 개인의 명예니 공로니 하는 것이야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것은 얼마나 슬기롭고 훌륭한 일인가. 성서는 말하고 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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