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2 (수)

홍운탁월(烘雲拓月)

동양화의 기법 중에 홍운탁월(烘雲拓月)이라는 기법이 있다. 달을 그리되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주변의 구름을 그리면서 달이 있어야 할 곳만 비워 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서양화처럼 직접적으로 화려한 채색을 하지 않고 은근히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보는 이들은 훨씬 은은하고 운치 있는 달을 느끼게 된다. 우리말에서 자주 쓰는 ‘변죽을 울리다’는 것과도 같은 이치이며 글을 쓸 때나 삶에서도 이런 이치는 작용한다. 매사를 사사건건 짚고 넘어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우리는 서양화적인 사고를 하는 모양이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 혹은 아이들을 대할 때 때로는 홍운탁월의 기법이 효과적일 때가 많은데 말이다.

 

젊은 시절 테니스에 몰입하던 때, 공휴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일기예보에 일희일비하던 때가 있었다. 아침에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한바탕 동이로 쏟아 붓듯 폭우가 내리면 오히려 희망이 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라켓을 들고 운동을 했다. 쏟아 붓는 빗물은 땅에 스며들지 않고 흘러가 버리고 코트는 말짱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그 날은 희망이 없다. 빗물은 그대로 스며들고 비가 그쳐도 코트는 늪이 되기 때문이다. 타이르는 말도 이와 같다. 폭풍 잔소리는 아이들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 버린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거듭되다 보면 내성이 생겨 전혀 효과 없는 그야말로 잔소리로 그치고 만다. 조용하지만 조단조단 타이르는 말이야 말로 내면 깊숙이 스며든다.

 

‘묵여뢰(?如雷)’라는 말이 있다. ‘침묵하고 있어도 뇌성과 같다’는 말이다. 내가 침묵하고 있어도 상대방이 나에게서 뇌성(雷聲)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깊은 강은 고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강물처럼 깊어져야 한다.

 

한편 넛지(Nudge)라는 용어도 있다. '팔꿈치로 슬쩍 찌른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와 카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공저 ''넛지''라는 책에서 소개된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택을 이끈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런데 그 힘은 생각보다 크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은 남자 소변기 한가운데에 조그마한 파리를 그려 넣었다. 지저분한 변기로 고민하던 끝에 생각해낸 처방인데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소변을 보며 파리 그림을 맞히려 했고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은 80%나 줄었다. “깨끗이 사용합시다.”라는 글을 붙여놓았을 때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낸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치 좋은 도심 도로 가운데 하나인 시카고의 레이크 쇼어 도로 (Lake Shore Drive)에는 S자 커브가 연달아 이어져 매우 위험한 구간이 있다. 그래서 감속 표시(시속 40킬로미터)를 해 놓았지만 운전자들이 보지 못해서 사고가 자주 일어났다. 그리하여 시 당국은 운전자들의 감속을 유도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도로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흰 선을 가로로 그려 놓았는데 이 선의 간격은 조금씩 좁아진다. 실제로 같은 속도로 달려도 운전자들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몰래 위기감을 느끼고 감속을 하게 되어 사고를 현저히 줄일 수 있었다.

 

의사가 수술해서 살아날 확률이 90%라고 말했을 때와 그 수술로 죽을 확률이 10%"라고 말했을 때 환자의 선택은 확연히 달라진다고 한다. 죽을 확률을 말했을 때 대다수의 환자는 수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다이어트를 하려면 좁은 그릇에서 식사를 해야 된다는 것과, 몸에 좋은 과일을 식당의 잘 보이는 곳에 놓아 집어가도록 하는 것, 뷔페 식당에서 인기 없는 음식을 앞에 배열하는 것 등도 넛지에 해당된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도 때로는 단도직입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좋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넌지시 변죽을 울리는 ‘넛지(Nudge)’가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 최홍석 칼럼니스트

 

최홍석

전남대학교 국문과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서울삼육고등학교 국어교사
호남삼육고등학교 교감 및 교장 정년

 

[대한민국교육신문]







인물·기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