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마음이 필요할 때 마시는 커피
강의로 많은 말을 하고, 다수의 수강생을 만나면 잠시 고요하게 나 자신에게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강사인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 간절할 때, 점심 휴게 시간을 이용해 그 사치를 누리는 곳이 있다.
회사 근처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가 있는 핸드드립 카페.
비 오는 날 잠시 회사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들어갔던 카페가 지금은 종종 나만의 사치가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그 카페의 문을 열고, 새로 들어온 원두가 있는지 메뉴보드를 확인하고 마셔보지 못한 원두가 있는지 살핀다.
유독 고요함이 필요한 오늘은 예멘 모카 마타리가 눈에 들어온다.
산미가 강하지 않고 묵직한 바디감에 초콜렛틱한 향이 특징인 예멘 모카 마타리.
예멘 모카 마타리는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마신 커피로 알려져 있다. 커피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 커피는 부드러운 신맛과 다크 초콜렛향, 묵직한 바디감, 적당히 씁쓸한 맛의 기품이 느껴지는 레드와인의 풍미까지 담고 있는 커피이다.
예멘은 아라비카 커피가 세계 최초로 경작이 된 나라이다. 아리비카 커피를 수입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에게 예멘의 모카 항을 통해 예멘의 수도 사나(Sana’a)를 중심으로 베니 마타르(Bani Mattar), 카라즈(Haraz) 등지에서 재배된 커피가 수출되었다.
예멘은 커피의 품질을 커피의 향미에 문제가 되는 결점두의 개수로 3개의 등급으로 분류한다.
결점두의 수가 적은 최고 등급은 마타리(Mattari), 그 다음 등급은 샤르키(Sharki), 마지막 등급은 시나니(Snani)라 부른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고 커피를 재배하는 나라가 늘고, 가공방식이 발달하면서 모카항의 명성은 사그라들었지만 예멘 모카 마타리의 맛은 변함이 없는 듯하다.
예멘 모카 마타리를 주문하고 의자에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커피를 공부하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 이야기를 매일 사람들과 나누면 행복할 것 같았는데, 커피를 마시고 커피에 대한 지식을 나눌수록 공허해지는 나를 보게 된다.
특히 에스프레소 머신 작동방법을 배우는 바리스타스킬 수업과 라떼 아트 수업이 개강하는 날, 시험이 있는 종강일이 되면 마음에 찾아오는 공허함이다.
정해진 수업 회차 안에서 수강생들을 연습시켜 합격을 시켜한다는 부담감과 시험을 앞둔 수강생의 불안함이 최고점에 달하는 시험 직전 수업을 앞둔 오늘. 남모래 고요한 사치가 필요한 날이다.
내가 아는 커피는 시험합격이 전부가 아닌데... 라는 생각에 찾아드는 감정인 듯하다.
시험을 목전에 둔 수업이 끝나고 한 수강생이 내 앞에 와서 선다.
“시험이 너무 자신 없어요.” “커피가 너무 좋아 배우기 시작했는데 잘 하지 못해서 속상해요.” “시험에 떨어질까 걱정돼요.”
커피를 너무 좋아해 커피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바리스타스킬 수업을 듣는다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녀. 그녀의 눈시울이 빨개지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한없이 움츠러든 그녀의 어깨를 나도 모르게 다독였다.
그리고 “괜찮아요. 시험 잘 볼 수 있어요. 저와 함께 조금만 더 노력해 봐요.” 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커피 이야기가 아닌 시험합격을 위한 많은 말을 하고, 커피가 좋아 시작했는데 잘 하지 못 해 자신감을 잃는 사람을 만난 후, 찾아오는 공허함.
점심 휴게 시간, 든든한 점심 메뉴 대신 공허함이 느껴지는 마음을 예멘 모카 마타리로 채우고 다시 강의실로 돌아간다. 시험을 걱정하는 수강생이 많았던 이번 클래스의 수강생들 그리고 그녀가 시험을 잘 마치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채우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 결점두 : 곰팡이, 해충의 피해를 입어 품질이 떨어지거나 발아가 제대로 되지 않아 기형적인 생두, 재배 상태가 온전하지 않은 생두들을 총칭하는 말로 로스팅 후 커피의 맛에 부정적인 향미를 갖게 한다.
[대한민국교육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