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대학 입학을 위한 수능 시험이 지난 목요일에 완료됐다. 수능 날 아침이면 대한민국의 시계는 늘 고3 학생들을 향해 돌아간다. 도시 전체가 시험장으로 변하고, 모든 뉴스가 ‘수험생’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그만큼 수험생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은 뜨겁기만 하다. 수능 이후에도 우리 사회는 한동안 수험생을 위한 각종 이벤트를 실시한다, 어디를 가도 수험생들에 대한 격려와 응원이 지속된다. 그러나 그날, 누군가의 열아홉은 시험장에 있지 않다. 영화 〈3학년 2학기〉가 보여준 장면처럼, 특성화고(실업계고)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이른 새벽 버스에 몸을 싣고 취업 현장으로 향한다. 어떤 학생은 자신이 만든 부품이 문제없이 돌아가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장으로 들어가고, 또 어떤 학생은 고객 컴플레인을 막기 위해 매장에 먼저 출근한다. 그들은 같은 나이지만, ‘수험생’이라는 말을 허락받지 못한 또 다른 열아홉이다. 이 장면은 우리 교육이 여전히 한 가지 잣대로만 청소년의 삶을 바라보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입 중심의 시선”이라는 잣대는 너무 강력해서, 그 틀에 들지 않는 청소년들은 쉽게 가려지고, 종종 ‘관리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된다. 하지만 우
말 한마디가 만드는 헌혈의 온도 헌혈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다릅니다.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또한 저에게 다르게 다가오지요. '어떤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처음 헌혈을 하러 오셨거나 오랜만에 하시는 경우, 궁금증은 조금씩 커집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피 한 방울, 그 결정 뒤에는 각자의 이유와 선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 급하게 들어오는 중년의 남성분, "끝났나요? 지금 할 수 있어요?" 헌혈이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혹시나 하는 웅크렸던 마음이 그제야 놓이는지, 안도의 표정을 짓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헌혈하는 동안에도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시는 걸 보면 오히려 제가 죄송해집니다. 지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가시려는 그분께 괜찮다며 마음 편히 계시라고 하지만, "간호사님들도 어서 퇴근하셔야죠!" 라며 환한 미소를 보이는 배려에 가슴 한편이 훈훈해집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고 왔어요. 바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아서요." 문자 한 통에 달려와 주시는 마음, 환자의 절실함을 외면하지
농번기 철이 되면 농사짓는 우리 집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초등학교를 갓 들어간 나와 동생도 농사일에 동원되었다. 잔심부름 정도나 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꽤 요긴하게 쓰였다. 모내기가 절정에 다다랐던 어느 날, 동생은 주막에 가서 인부들의 술을 사오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떠났다. 그러나 예상했던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초조해진 아버지는 2차로 나를 보내서 알아보도록 하셨다.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서 주막으로 향하던 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했다. 지금쯤 구슬땀을 흘리며 돌아오고 있어야 할 동생은 주전자를 팽개친 채 냇물 속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유인즉 부지런히 심부름을 가고 있노라니 냇물 속에 솥뚜껑만한 자라가 물풀에 걸려 허둥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힘을 합하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나도 합류를 했다. 그리하여 자라 체포에 나섰고 시간은 흘렀다. 멀리서 지르시는 아버지의 노한 고함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자라의 행방을 좇았고 그날 동생과 나는 죽도록 혼이 났다. 레리 L 릭텐월터가 쓴 『잘 박힌 못』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미국인이 인디언 친구와 함께 맨해튼 시내를 걷고 있었다. 대도시의 소음과 들끓는
아기가 가르쳐준 철학 -걷기 전에 뛰려 했던 나- 어느새 가을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서 나의 시선은 책상 위 달력에 잠시 멈춰진다. 이제 남겨진 두 장의 달력,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그동안의 기록들을 하나씩 따라가며 지나간 일들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한 해를 돌아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란 늘 아쉬움 투성이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작심 삼 일로 끝날 때마다 여린 내 마음은 더욱 무겁기만 하다. 마치 개학은 다가오는데 밀린 숙제가 남아 있는 초등학생처럼 말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못하는 이유에 사람들은 흔히 시간이 없다고들 말한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없어서일까?’ 조용히 반문해 본다. 솔직히 말하면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하기 싫은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변명’에 불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고 싶지 않다는 게 더 정확한 이유인 것 같다. 아직 부족한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 못 하는 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 그런 나의 모습이 보인다. 무엇이든지 처음엔 서툴러서 그것이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러고 싶지
언젠가 내셔널지오그래픽 TV를 보다가 숲에 있는 나무의 나이테를 보고 연어가 풍년이었던 해를 알 수 있다는 내용을 보고 경탄을 했던 적이 있다. 연어를 잡은 곰이 숲에 와서 먹이활동을 하고 부산물을 버리기 때문에 나무가 잘 자라서 그 해의 나이테가 넓다는 것이다. 확실히 산과 바다와 땅에 있는 삼라만상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어렸을 적 교과서에 있던 동화 생각이 났다. “엄마 닭과 모이를 쪼아 먹던 병아리 목에 딱딱한 것이 걸렸다. 놀란 엄마는 우물로 달려가 물 한모금만 달라고 했다. 우물은 물길을 그릇을 가져오라고 했고 엄마 닭이 떡갈나무에게 달려가 도토리깍정이 하나만 달라고 하자 떡갈나무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고 했다. 바람에게 떡갈나무를 흔들어 달라고 하자 바람은 떡갈나무를 흔들어 도토리깍정이를 떨어뜨렸고 엄마 닭은 그것을 주워들고 우물로 달려가 물을 길어다 병아리에게 먹였다.” 그 때는 단순히 재미만 있었는데 이제 보니 모두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비는 땅에 내려 식물을 자라게 하고 시내를 이루어 강물로 바다로 흘러 다시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고 비는
정년 퇴직 후에 손자·손녀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볼 때, 우리는 시간이 만든 세대의 간격을 넘어서 또 다른 사랑과 책임을 체험하게 된다. 정작 부모가 되었을 때 직장에 얽매여 미처 자세하게 느끼지 못한 내리사랑을 경험한다. 손주들이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처음 글자를 배우는 등 이런저런 작은 성공과 좌절을 겪을 때, 지켜보는 부모는 물론이지만 또 다른 보호자인 조부모는 그 순간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교육의 축’으로 자리 잡는다. 최근 여러 가정에서 이러한 역할을 ‘격대교육(隔代敎育)’, 즉 조부모가 손자·손녀의 성장에 적극 참여하는 교육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의 사회학자 메릴린 밍거스(Merril Silverstein)와 빙트슨(Vern L. Bengtson)이 발표한 ‘세대 간 연대(Intergenerational Solidarity) 이론’ 연구는 가족 구성원 간의 정서적·사회적 유대가 아동 발달과 심리적 안정에 큰 영향을 준다고 밝힌 바 있다. 2012년 「Journal of Marriage and Family」에 실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조부모와 손주의 친밀한 관계는 손주의 자존감과 사회적
최근 한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큰 호응을 얻는 스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배우이자 아이돌인 차은우는, 단순히 ‘잘 생기고 인기 있는 연예인’ 그 이상으로 교육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가 걸어온 성장의 궤적과 대중적 영향력은 청소년들을 교육적인 길로 인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차은우를 통해 청소년 교육의 새로운 길잡이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왜 차은우인가? 차은우는 아이돌 그룹 ASTRO의 멤버로 데뷔한 후 배우로 영역을 확장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높였다. 그는 현재 군 복무 중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10대·20대 청소년층에서의 선호도가 높아 ‘10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타’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인기와 영향력은 단순히 팬덤 차원을 넘어 ‘모범적 이미지’, ‘성장 롤모델’로서 교육적 활용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2. 교육적 메시지의 요소 차은우의 커리어와 태도에는 청소년 교육에서 유의미하게 다룰 수 있는 요소들이 다음과 같이 다수 존재한다. ►꾸준한 자기계발: 아이돌로 데뷔한 이후 배우로서도 연기 준비를 하고, 영화 등 다양한 도전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청소년들에게 ‘안주하지 않고 성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어느 해 홍수가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 마을은 큰 피해를 입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무너진 곳을 복구하기 위한 대책 회의를 했다. 그러나 밤이 깊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많은 의견들은 있었다. 한 사람이 “집에 소가 두 마리 있는 사람은 한 마리를 마을에 기부하도록 합시다.” 말하자 모두들 찬성했다. 또 다른 사람이 “집에 수레가 두 대 있는 사람은 한 대를 기부합시다.” 그러자 모두들 찬성했다. 이번에는 한 사람이 “집에 닭이 두 마리 있는 사람은 한 마리를 기부합시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두들 반대를 했다. 소나 수레가 둘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닭은 모두들 두 마리 이상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늦도록 열띤 토론을 했지만 자기희생이 없는 토론은 흡족한 결론을 낼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것에 대해 잘 말하고 있는 사람은 레바논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이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베푸는 것은 베푸는 것이 아니고 진실로 베푼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것이란 내일 혹 필요할까 두려워 간직하고 있는 것이고, 대부분의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로라를 꿈꾸는 70세 청년을 만났다 '참 멋있어!’ 그분을 뵐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헌혈 센터에서 근무하다 보면 비교적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20년 이상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얼굴만 보아도 나이를 가늠할 수 있지만, 가끔은 생각했던 것보다 나이 차이가 나서 놀랄 때도 있다. 오늘 만난 분이 그렇다. 건강에 누구보다 관심을 가질 나이지만 항상 활기찬 모습으로 헌혈을 정기적으로 해주시는 분이다. 내년이면 71세, 헌혈할 수 있는 나이가 만 69세까지니 더 이상 헌혈이 어렵다. 헌혈할 수 있는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오늘의 헌혈이 더 소중하다고 하신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그분과 이야기를 조금만 나누어 보아도 그가 가지고 있는 긍정에너지가 전해진다. 그래서 옆에 있는 사람까지도 기분이 좋아진다. 헌혈하러 오실 때마다 인생의 선배로서 도움이 될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는데, 오늘은 여행을 가신다며 넌지시 말을 건넨다. 죽기 전에 한 번쯤은 꼭 봐야 한다는 오로라를 위한 아이슬란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 여행을 준비하면서 체력이 정말 중요할 것 같다는 말을 강조하신다. 은퇴 후 삶을 즐기고 있는 그에게 나는 물었다. “노년에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언급하며 “앞으로의 세상은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와 두려움을 표명하면서 이 말이 하나의 명제로 확고한 위상을 굳혀 왔다. 이제 이 말은 우리가 살아가는 경고성 현실이 되었다. 인공지능의 급격한 발전, 기후위기, 팬데믹, 전쟁과 관세 협상 등 경제 불안정 등,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며, 오늘의 ‘상식’이 내일의 ‘과거’가 되는 시대다. 이런 시대에 교육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안목과 비전을 품은 인재를 길러야 할까? ■ ‘정답’보다 ‘질문’을 가르치는 교육 과거의 교육-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문제집에는 늘 하나의 답이 있었고, 그 답을 빠르고 정확히 찾는 학생이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ChatGPT와 같은 AI가 글을 쓰고,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달리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정답 찾기’가 아니라 ‘새로운 질문 던지기’다. 북유럽의 교육 선진국 핀란드의 경우 고등학교에서는 일찍부터 과목 중심 수업이 아니라 ‘주제 중심 프로젝트 학습’을 도입했다. 예컨대 “기후위기 속에서 지속가능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