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고쳐 쓸 수 있을까? 좋아하지 않는 말, 하지 않는 말이 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물건에 비유해 쓴다고 하는 용도의 개념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의 무엇을 고치고 싶었을까?’, ‘고장 난 물건을 고치듯, 타인을 고친다는 게 맞는 말일까?’,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고쳐지는 물건. 그러한 물건에 사람을 비유할 수 있을까?’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래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 오랜만에 들은 이 말에 문득 다른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커피는 고쳐 쓸 수 있을까?’ 에어컨에서 바람이 나오는 소리, 제빙기에서 얼음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강의장 자동문이 열리며 자리에 앉기 시작한 수강생들. 강의실에 들어온 수강생들의 눈길은 강사인 나보다 내 앞에 가득하게 놓인 각종 재료들로 자연스럽게 향한다. 맨 앞쪽 테이블 위에 가득하게 놓여있는 시럽과 파우더, 소스, 페이스트 등을 눈으로 살펴보는 수강생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커피의 품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추출할 때 사용하는 커피의 품
추석 즐겁게 보내세요! 2024년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올해는 추석이 구월 중순에 있고, 매우 무덥던 여름 기세가 꺾이지 않아 아직도 한낮에는 한여름을 방불케 합니다. 그래도 명절이 다가오니 들뜨고 즐거운 마음에 밝게 인사를 나누게 되고, 길거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 쓰인 추석 인사말들도 흥을 돋웁니다. “즐거운 추석 되세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이런 인사말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읽기도 하는데, 그 뜻이야 모를 리 없건만 문법적으로는 어정쩡합니다. 문법적 직관이 발동된다면 ‘저 표현이 맞는지...?’ 하며 고개를 기웃거릴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듯이 ‘국어 잘 쓰는 법’을 아는 만큼 표현을 잘할 수 있겠지요. “즐거운 추석 되세요.”와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는 문장의 주어를 높이는 ‘-시-’가 포함된 ‘-세요(‘-시어요’의 준말)’가 쓰였다는 점에서 ‘당신이 즐거운 추석이 되세요.’, ‘당신이 풍성한 한가위가 되세요.’처럼 상대방을 주어로 삼은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상대방에게 ‘즐거운 추석’이나 ‘풍성한 한가위’가 ‘되’라고 하는 문장이 되고 마는데, 사람이 추석이나 한가위가 ‘될’ 수는 없지요! ‘
가을이 되면 당신은 9월이 되었다. 어릴 때는 9월이 되면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바뀌었지만, 올해는 폭염, 그리고 일본에서는 방금 지나간 태풍의 영향으로 한여름 못지않은 열기가 도시를 뒤덮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이라는 어감 자체가 신기하게도 이미 여름이 지나갔다고 선언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것은 1988년 9월에 다녀온 프랑스 어학연수이다. 한국에서는 같은 시기에 올림픽이 열려 그 후, 본격적으로 선진국을 향한 달리기를 시작했던 것처럼 나도 그 어학연수를 계기로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프랑스법을 전공한다는 지금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가을과 프랑스 하면 샹송 곡 '고엽(Les feuilles mortes)'도 떠오른다. 애절한 실연 이야기가 담긴 가사가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대학생 시절 프랑스어 수업에서 이 가사를 외우는 것이 숙제였던 적이 있다. 암송 시험도 있었지만,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조금 길어도 외우는 것이 힘들지 않았던 기억이 든다. 나는 작년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이 곡의 슬픈 재즈 멜로디는 색소폰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색소폰으로 애절함을 표현하는 것은 정말 어렵게 느껴진다. 아마 기술
당신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더운 여름. 뜨거운 열기에 숨이 턱 막히는 공간에 들어가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누른다. “윙~” 에어컨은 기다렸다는 듯이 날개를 펼치며 차가운 바람을 뿜어낼 준비를 한다. 더위에 다급해진 마음은 좀 더 낮은 온도를 외치며, 최대한 숫자를 낮춘다. 공간의 열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져 사라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차가워진 온도가 지속되다 보면, 또 다른 마음이 올라온다. ‘추운데.. 온도를 올려야 하나..’ 차가운 바람이 살결에 닿으면 더위에 힘들던 순간은 잊고, 이제는 차가운 온도에 적응이 힘들어 투덜거린다. 너무 더울 때는 시원해지기만 하면 좋을 거야 하는 마음이 앞섰다가, 시원한 나머지 추위가 몰려올 때는 다시 좀 따뜻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며 변한다. 이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에어컨 온도를 찾기가 힘든가 보다. 행복 심리학의 선구자라고 알려진 에드 디너(Ed Diener)는 ‘행복은 도달해야 할 상태가 아니라 여행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저서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에서는 모나리자의 미소에는 기쁨 83%, 슬픔 17%가 섞여 있다고 하며, 우리의 삶도 기쁨과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 깨어있기를 “행복을 위해서는, 행복해지는 데는, 얼마나 작은 것으로도 충분한가! 더할 나위 없이 작은 것, 가장 미미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락거림, 한 줄기 미풍, 찰나의 느낌, 순간의 눈빛……. 이 작은 것들이 최고의 행복에 이르게 해준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니체가 말한 ‘가장 미미한 것’이란 이런 것이었으려나. 토요일 아침, 나는 달콤한 늦잠에 빠진 아이에게 조용히 다가간다. 한쪽으로 몸을 세워 자는 아이의 뒤편으로 살짝 다가가 살포시 껴안는다. 잠결에도 엄마인 걸 아는지 등을 밀착시키고 내 손을 잡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내게 안긴 아이의 체온이 주는 따스함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나는 가끔 “사람의 체온만큼 따뜻한 게 없더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어떠한 따스함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온기만큼 따뜻하고 평온하고 허기진 영혼을 채우는 것은 없지 않을까 싶다. 엄마와 아이라는 관계성도 분명 작용했겠지만, 아이에게서 느낀 따스함은 내 마음과 생각이라는 영역을 빠르게 지나쳐서 그 어떤 것에 바로 닿고 있음을 순간 느꼈고 그것만으로 충만했다. 그 말랑하고 심연 같은 느낌을 굳이 어떤 한 단
마음속에 결점두 “맛있는 밥 한 끼 같이 먹자!” 말을 꺼낸 지인. 가족 행사 때문에, 사정이 생겨, 출장이란 이유로... 이상하리만큼 한 친구는 나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면 다른 일이 생겨 취소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1년 동안 미루어지던 약속을 다시 잡은 친구. 이번에는 지켜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속을 확인하려 보낸 톡, 돌아온 친구의 답장은 급한 일정으로 다음 주로 미룰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답장으로 순간 마음속에서 화가 일었다. 이쯤 되면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이렇게 매번 취소하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불쾌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맛있는 밥 먹자.”라고 답장을 보냈었지만, 이번만큼은 화가 난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친구의 미안하다는 사과에도 말뿐이었던 약속에 서서히 무너지던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니 그 사과는 의미 없는 말로 들렸다. 친구와 톡을 주고받은 후, 좋지 않은 마음을 감추고 강의장으로 향했다. 로스팅 수업 첫날,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로스팅을 맛있게 잘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생각하지 않은 질문에 강의실 안은 잠시 정적이 흐
프랑스 와인은 언제부터 유명했을까? 와인 하면 프랑스! 프랑스 하면 와인! 와인에 관심이 없어도 프랑스가 와인으로 유명한 것은 익히 잘 알고 있다. 와인 애호가들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매력넘치는 프랑스 와인의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프랑스 와인의 기원은 기원전 600년경 프랑스 마르세유 인근 지역에서 페니키아인들이 양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기원전 54년경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현재의 프랑스 지역으로 원정을 왔을 때, 카이사르는 긴 원정 중에 와인을 마실 수 없음을 고민하여 현재의 보르도 지역에 포도원을 건설했다. 보르도 지역은 와인을 생산하기에 이상적인 기후와 토양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에 와인 생산 지역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유럽의 아버지’라고 불린 샤를마뉴 황제가 8~9세기에 와인 생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면서 프랑스 와인은 체계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152년, 보르도 지역이 포함된 아키텐 공작령의 여공 엘레오노르와 영국 헨리 왕자의 결혼을 계기로 보르도 와인이 영국에 수출되기 시작했다. 영국인들은 보르도 와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이로 인해 보르도는 17세기와 18세기를 거쳐 세계적인 와인 산
결정 하나로 더 행복하게 살자 시간이 있으면 하자, 자투리 시간이 있을 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결국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있다. 이렇게 관심사가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내가 있는 반면, 관심이 있어도 실천하지 못했던 나를 보며 자존심이 떨어진다. 케임브리지 대학 바바라 사하키안(Barbara Sahakian)교수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에 최대 약 3만 5천 번의 결정을 한다고 한다. 말 한마디 하지않은 단계에서 이미 수많은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한다. 또한 몸을 계속 움직이면 피곤한듯, 결정을 계속 내리면 뇌가 피로해져 점점 결정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이 현상이 바로 '결정 피로'이다. 결정 피로에 대해서는 심리학자 조너선 레바브(Levav)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이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판사들의 가석방 심사 결과를 분석한 연구가 유명하다. 가석방 심사는 범죄자가 충분히 죄를 뉘우쳤다고 생각하면 형기를 꽉 채우지 않고도 사회로 돌아가게 해주는 제도이다. 연구진은 무작위로 선정한 판사 4명의 심사 결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체력이 온전한 이른 오전에는 가석방 비율이
몸이 전하는 메시지 두 발에서 시작하여 발목을 지나 무릎, 허리, 머리로. 시선을 옮기며 긴장을 풀어본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들이쉬고는 “후” 하고 내뱉는다. 며칠 동안 목과 어깨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 모니터만 바라보는 일을 오랜 시간 지속해서인지 최근에는 부쩍 몸이 무겁다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는 몸을 한번은 들여다보면 좋다. 건강검진 등 몸을 체크하는 방법 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가끔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 잠들기 전이나 아침, 몸을 살피는 작업을 한다. 발끝에서 머리로, 그리고 머리에서 발끝으로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살펴보는 이 과정을 통하여 몸이 하는 말을 듣기도 하고, 몸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두 눈을 감고, 몸을 살펴보는 것. 그것을 흔히 바디스캔이라 한다. 바디스캔(Body scan)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으로 마음 챙김 명상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그 방법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잠시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바닥이나 침대에 몸을 펴고 누워 의도적으로 몸 전체의 감각을 살펴본다. 엄지발가락을 중심으로 발끝을 살피고, 머리까지 몸을 스캔하듯이 관찰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피부의 감각,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정말 잘 걷는다.” 라는 말이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는 내 등 뒤에서 들린다. 눈앞에 출발 지점에서 10km를 걸어왔다는 이정표가 보일 때쯤, 산길을 앞서서 묵묵히 가고 있는 나를 보고 지인이 하는 말이다. 지인과 집에서 가까운 산을 찾았다. 산 중턱까지 완만하게 둘레길로 연결되어 있지만, 급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길은 구간 구간 어김없이 나타나 숨을 헐떡이게 하고, 몇 시간째 걷고 있는 우리에겐 평지 또한 만만하지 않다. 산을 다 내려가기 위해 이 길을 끝까지 간다면 둘레길 한 바퀴, 14.5km를 걷는 셈이다. 처음부터 계획했던 건 아니다. 보통 7km를 걷는 나는 큰 욕심 없이 오늘도 딱 그 정도만 예상했지만, 지인은 한 바퀴를 돌아보고 싶다며 의욕을 불태운다. “그래, 그렇게 해 보고 싶다면 해 보자.” 한낮의 태양은 불타는 듯이 뜨거웠지만, 다행히 산길은 우거진 나무의 초록 잎들이 햇살을 다 받아내며 그늘까지 만들어준다. 처음엔 지인과 나란히 걷는다. 그러다 급경사의 오르막을 만나 헐떡이고 다시 평지를 걷고 내리막을 수월하게 통과하기도 한다.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에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짙어가는 나뭇잎을 보며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