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해는 나의 시선과 관점이 타인을 향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지만 실은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후, 그 시선을 돌려 타인을 긴 시간 바라볼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바라보기 쉽지 않으니 타인을 편견이 없이,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오해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그 사람의 생각을, 삶을 이해할 만큼의 경험치가 부족하거나, 나의 생각의 틀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거나 평가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본다. 커피가 나에겐 그러한 타인이다.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이름, 나이, 고향, 성격 등을 알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생각,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 등도 알아가듯이 한 잔의 컵에 담긴 커피의 향미도 제대로 이해되려면 커피가 되기 전 생두, 원두부터 알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에서 온 생두인지, 생산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로스팅은 어느 정도인지, 언제 로스팅이
6월. 아름다운 계절이다. 산책을 할 때에도 나무의 푸르름, 형형색색의 꽃들이 눈에 띈다. 자연이 빚어내는 다양한 색의 하모니에 인간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느낀다. 그런 속에서 나는 나만의 사색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매일 소설의 일부를 읽고 그곳에서 생각한 내용을 자유롭게 글로 표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고 있다. 문학 작품을 읽고 그 구절을 바탕으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현재 글쓰기에 대한 세상의 관심은 높다. 누구나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될까? 진주는 조개 몸속에 이물질과 조개 성분을 분비하는 외투막이 혼입되어 형성된다. 외투막이 이물질을 덮고 그것이 진주 주머니가 되어 칼슘 결정과 단백질이 번갈아 쌓여 진주층을 형성한 것이 진주가 된다고 한다. 양식의 경우 먼저 조개 안에 핵을 넣는 작업을 한다. 이는 조개에게는 대규모 수술이기 때문에 이 작업을 받은 조개는 심하게 약해진다. 따라서 한동안 양생을 시킨 후 본격적인 양식 과정이 진행된다. 그 후 진주가 자랄 때까지 3, 4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그 동안 조개를 그냥 방치하는 것은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본 '왜 오수재인가? 라는 드라마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인간을 변질시키는지, 성공하는 삶과 잘 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은 늘어나지만, 연소득이 75,000달러 수준에 도달하면 그 흐름은 멈춘다.” 2010년 미국의 경제학자 카네만(Kahneman)과 디턴(Deaton)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를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런데 2023년, 카네만과 킬링스워스(Killingsworth)가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킬링스워스가 혼자서 2021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와 비슷해, 행복감은 소득 증가와 함께 계속 상승하고 정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2023년에 발표한 연구를 근거로 하는 조사에는 킬링스워스가 개발한 앱이 활용되었다. 2010년 연구에서는 전화 조사로 조사 전날 상황에 대해 행복감을 느꼈는지 등을 조사 대상자에게 질문을 했다. 반면에 2023년 연구에서는 하루에 세 번 현재의 기분을 앱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데이터가 수집되었다. 전화 인터뷰처럼 과거의 감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지금 여기의
“나도 언니처럼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얼마 전 신문에 연재된 내 글을 읽은 지인이 보낸 문자이다. 언젠가 통화를 할 때도 글쓰기에 관심을 보이길래, “뭐라도 좋으니까 일단 써. 가장 접근하기 좋은 게 블로그인 것 같아. 닉네임으로 통하니까 네가 누군지도 몰라. 일기도 좋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점점 글쓰기가 익숙해질 거야. 편하게 접근해 보자.”라고 말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지인은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나의 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글쓰기는 무조건 쓰는 수밖에 없어. 매일 딱 한 줄이라도. 일단 시작해 봐. 그럼 고민의 내용도 달라질 거야.” 정말 이번엔 지인이 시작할 수 있을까? 일단 시작을 해야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 수 있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일에 해당이 되는 말이라 생각한다. 저질러봐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향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나는 호기롭게 시작하고 중도 포기한 것들이 많다. 주변에선 내가 시작은 잘하는데 끝이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남편과 어쩌다 자격증을 따겠다며 들인 시간과 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조용히 입 다물
며칠 전, 한 장의 명함을 받았다. 우연히 받은 명함에 독특한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향기였다. 코끝을 살포시 스치는 라일락 꽃향기가 명함 끝자락에서 느껴졌다. 그 덕분에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이 찾아왔다. “명함에서 좋은 향이 나는데요.” “아. 제가 아침에 실수로 가방에 향수를 쏟았는데 그 향이 명함에도 스며든 것 같아요.” 실수로 쏟은 향수 때문에 명함에서 향기가 나는 상황이 되었지만, 명함의 향으로 이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장의 명함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은 기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함을 보고도 상대가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런데 전해 받은 명함에서 좋은 향이 난다면, 그 대상을 좀 더 기분 좋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심리학 용어 중에 각인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동물학자 로렌츠에 의해 유명해진 개념인데, 새끼 오리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나온 것이다. 새끼 오리들이 한 남성을 종종거리며 따라가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실험의 대표적인 결과이다. 로렌츠는 인공부화기에서 부화시킨 새끼 오리들이 태어난 순간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마치 어미 오리처럼 따라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얼마 전 비 내리는 토요일. 지역에서 나름 알아주는 쌍화탕 조제 전문점에 들린 적이 있다. 맛을 보라며 따뜻하게 데워진 쌍화탕을 건네는 사장님의 얼굴이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다. 컵을 두 손으로 꼭 잡는 순간 따스함이 손끝으로 전해진다. 한 모금 마시자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움츠러들었던 몸이 사르르 녹고 마음도 편안하다. 문득 건물 입구에서 촉촉한 5월의 비를 맞으며 탐스럽게 피어있던 작약꽃이 떠오른다. “작약이 활짝 폈어요. 이맘때가 꽃이 한창 필 때인가 봐요?” “그렇죠. 지금 꽃이 이쁘게 필 때죠. 쌍화탕에 작약 뿌리가 들어가요. 그래서 작약밭을 크게 하는데 꽃이 볼 만하죠.” 라고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얼굴엔 좋은 재료를 쓴다는 자부심과 작약꽃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생긴 것에서 오는 반가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내가 보인 작은 관심은 의외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가게 여기저기에는 다양한 화초가 자라고 있었고 윤이 날 정도로 반짝이는 화초의 모습에 신기해하자, 사장님은 “좋은 약재 찌꺼기” 덕분이라며 웃으신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으셨던지 “작약꽃 몇 송이 드릴까요?”라고 하시며 바깥으로 나가신다. 잠시 후 나는 보라색과 흰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작약꽃 한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걸요.” 오늘도 어깨를 축 늘어뜨린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아 무엇인가 시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 현실의 벽이란 경력, 학력 등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것들로 인하여 원하는 분야로 진입이 어렵다는. 그래서 마음이 힘들다는 것이다. 가끔 자신의 환경과 한계를 이야기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답답한 마음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곤충학자가 벼룩의 점프력을 확인하는 재미난 실험을 했다. 일반적으로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가 넘는 높이로 뛰어오를 수 있다고 한다. 30cm 정도 높게 뛰어오를 수 있는데 사람으로 따지면 고층 빌딩 높이까지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이런 벼룩을 15cm 투명한 유리병에 넣고 덮개를 덮으면, ‘탁탁’ 소리가 들린다. 벼룩이 뛰어오르며 덮개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이다. 얼마 뒤, 그 소리는 멈추게 되는데 이때 학자는 신기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30cm까지 뛰어오를 수 있는 벼룩이 덮개에 부딪히지 않기 위해 15cm 높이로 일정하게 뛰는 것이다. 잠시 뒤 덮개를 제거했음에도 불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독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 이였지만 출퇴근 길, 전철 안에서 또 집에서도 자주 책을 읽으셨다. 게다가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매일 밤 내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 주셨다. 몇 살까지 그랬는지 잘 기억이 못 되었지만 아마 초등학교 2,3학년까지 그러셨던 것 같다. 내가 유치원생 때, 밤에 아버지가 읽으신 동화책을 낮에 다시 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나도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도 계속 책을 읽어 주셨지만 3일에 한 번정도 퇴근 길에 나를 위해 책을 사 오셨다. 내가 전기와 세계 명작을 많이 읽은 시절은 바로 그 때다. 나의 생활 속에 늘 책이 있고 나는 독서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나에게 책을 읽어 주신 것도 책을 자주 사 오신 것도 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 특별히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엄마가 돼서 매일 책을 읽어 주는 일이 얼마나 끈기가 있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매일 회사에서 다녀와서 피곤하셨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매일 나에게 책을 읽어 주셨고 나의 부탁을 거절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도,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말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남편이 새로운 식당을 알게 된 것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우리는 휴일 점심을 새로 알게 된 식당에서 하기로 하고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한다. 아이는 기분 좋게 준비를 먼저 끝내고 엄마, 아빠의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완벽했다. 잠시 후, 나갈 채비를 마친 남편의 그 말만 없었다면 말이다. “○○는 가기 싫어?” 어쩐지 말이 퉁명스럽다. 핸드폰에 빠져 있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걸까? “아니거든.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표정이 굳어져 간다. 나를 향한 아이의 시선은 ‘내가 뭐?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라며 억울함을 담고 있다. 현관문을 나서는 아이와 아빠의 뒷모습이 편하지 않다. 남편과 잠시 떨어져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지금 기분 물어봐도 될까?” “아빠 때문에 기분이 별로야.” “그렇구나. 아빠 어떤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을까?” “나는 가기 싫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싫었어.”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럼 아빠가 어떻게 말하면 좋았을까?” “준비 다 했어? 맛있는 식당
아침부터 청소기 소리가 요란하다. 오랜만의 연휴라 가족들 모두 각자의 방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나 역시 이리저리 펼쳐놓은 책들이 가득한 책상을 내려다본다. 이틀째 그대로인 책 페이지며, 먼지가 내려앉아 걸레질을 해야 할 것 같은 탁상시계와 안경. 먹다 남은 커피.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지웠는지 하얀 책상 위에 뿌려진 지우개 조각들까지.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책상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여러 일로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그런데 덩달아 지저분한 책상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짜증 어린 감정이 올라왔다. ‘마치 정리되지 못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내 나는 창문을 열고, 걸레를 챙겨 책상과 선반을 닦기 시작했다. 읽기 위해 꺼내 두었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들은 책장으로, 흩어져 있던 물건들은 서랍 속으로 정리했다. 남겨진 책들은 크기별로, 자주 보아야 하는 순으로 두고, 마지막으로 볼펜꽂이에서 잘 나오지 않는 볼펜들을 하나씩 살폈다. 책상을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