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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9 (목)

김연희 작가 에세이

사랑은 나를 채우고 흘러간다


 

뽀드득뽀드득.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이 새겨질 때마다 귀엽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온다. 끝없이 이어진 계곡을 따라 길게 뻗은 둘레길엔, 며칠 전 내린 첫눈이 남아있다. 눈은 한낮의 따스한 햇볕에 질펀하게 녹아내려 조용히 계곡으로 스며들고, 해가 들지 않는 그늘진 자리는 소복하게 쌓인 채 그대로다. 난 일부러 아무도 밟지 않은 곳으로만 성큼 걸어가 발자국을 남겨본다. 먼저 간 이들의 흔적이 아름다워, 보기에 흐뭇했는지도 모른다. 그냥 흩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랄까!

 

난 그렇게 한참을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을 요리조리 피하며 걷는다. 그러다 계곡을 타고 흐르는 바람처럼, 한 줄기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 걸음이 내가 가려 하는 인생의 길이구나.”

 

누군가 남긴 무수히 많은 발자국을 피해 내 길을 가고 있지만, 결코 길에서 동떨어지지 않았고, 뒤돌아보면 모든 발자국이 그 자리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나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한다. 뻔뻔하고 이기적인가 싶어도 그 배경엔 늘 사람이 있다. 내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들도 그들 자신으로 사랑하기를 응원할 수 있음이고, 나를 포함한 모든 이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표가 나기 마련인가 보다. 간혹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하니 말이다.

“너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

그러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말한다.

“당연하지. 나를 너무 사랑해.”라고.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사람이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타인이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누군가 내게 사랑한다고 말을 해도 그 사랑을 알아차릴 수나 있으며,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나 있겠는가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오로지 나에게 쏠려있던 시선이 조금씩 외부로, 타인에게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은 자기 사랑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음을 느끼던 날이기도 하다. 드디어 나를 채우고 조금씩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리라.

 

“우리가 사랑을 실행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사랑하게 된다. 우리가 더 사랑할수록 우리는 더 큰 사랑을 실행한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 세도나 마음혁명, 레스트 레븐슨, 도일 헤스킨

 

그때부터였을까? 내 세상에는 이전에 없던 사랑과 온기와 이해가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고, 포용할 수 있는 깊고 넓은 세상을 선택한 사람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축복이리라. 부러움, 기대, 열등감 같은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며 자책하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린다.

 

남이 가진 것과 재주를 내 것과 비교하지 않고, 타인에게 기대하던 마음을 내려놓아 본다. 행여 그런 마음이 불쑥 올라오더라도 자책과 자학으로 일관하던 것을 멈추기 시작하자 세상은 놀라움으로 답을 한다. 드디어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먼저 무엇인가를 주고 싶어졌고, “어떤 것을 좋아할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헤아려보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허기진 듯 내 것부터 채우기 바빴던 세상은 이제 다른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그것은 강요나 의무가 아닌 오로지 타인을 위해, 어떤 의도도 없는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 내 안에서 발현된 것이리라. 골짜기 여기저기에 쌓인 눈이 햇살에 녹아 흙으로 스며들고 결국엔 계곡에 합류해 힘찬 물줄기가 되는 것처럼, 지금 나도 ‘나’라는 존재와 타인의 삶에 이기심을 내려놓고 조화롭게 스며드는 법을 배워간다. 이제야 말이다.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