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퓨즈드 커피 - 하루를 함께 살아주는 향
하늘이 뿌연 수요일 아침, 나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잘 잤어? 좋은 아침.”
흐린 하늘처럼 마음마저 무거운 날, 향이 좋은 커피 한 잔과 마음이 흐를 수 있는 글 한 줄로 아침을 열어본다.
책장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고, 베이글을 굽고, 콜롬비아 원두를 그라인딩하자 체리향이 방안에 퍼진다.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이 닿자 하얀 꽃잎이 하늘거리는 봄날, 살며시 찾아든 체리향이 방 안에 퍼진다.
커피에서 체리향이 이토록 선명하고 풍성하게 잘 느껴지는 이유는 특별한 가공 방식에 있다.
인퓨즈드 가공(Infused Processing)은 생두를 발효·건조시키는 과정에서 체리, 열대과일, 바닐라와 같은 특정 향미를 가진 천연 재료를 함께 넣어 자연스럽게 향이 생두에 스며들게 하는 가공 방식이다.
콜롬비아에서는 최근 몇 년간 인퓨징 가공 방식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El Paraiso 농장은 이러한 가공 방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농장이다.
단순히 향을 첨가하는 것이 아닌, 부드럽게 생두 안에 특정 향을 스며들게 하는 섬세한 가공 과정이다. 생두를 저온에서 발효시키며 생두의 미세한 구조 속으로 향을 침투시키는 기술이 필요한 가공 방식이기에 인퓨즈드 커피에서 특정한 향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콜롬비아 커피에서 느껴진 체리 향은 품종, 그 자체의 향이 아닌 가공 과정에서 만들어진 시간과 기다림의 향이다.
그러한 인내로 만들어진 달콤한 향을 맡으며 원두에 물을 천천히 부어준다.
물이 닿자 선명하게 체리향이 올라온다. 아로마를 맡으며 오래도록 잊고 있던 사랑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멈춘다.
사랑은...
상대가 힘들지 않아도 챙기고 싶은 마음이 들고,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자꾸 생각나는 것.
‘바빠서’ 대신 ‘어떻게든 함께 있고 싶다’ 말하고, 그 사람의 하루가 어떤지 궁금해 먼저 물으며 하루를 함께 살아주는 것.
고요해도 허전하지 않고, 관계가 불편하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이 아닌, 상대를 행복하게 하고 싶어서 하는 행동들로 표현되고 그것이 느껴지는 것.
이러한 것이 사랑이 아닐지...
브루잉을 끝내고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문다. 그리고 향을 맡으며 커피를 천천히 한 모금 마신다.
체리향이 그윽하게 입안에 퍼진다.
풍성한 체리 향에 비해 커피의 맛과 질감은 풍성하지 못하다.
나는 커피와 사랑이 닮아있음을 이 순간을 통해 조용히 깨닫는다.
향이 좋은 커피가 맛도 좋다는 공식까지는 성립되지 않듯,
향이 스며들어 맛까지 어우러져야 좋은 커피인 것처럼, 사랑도 잠시 보여주는 행동이 아닌 상대의 행복을 위해 긴 시간과 함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함을...
조용히 컵을 내려놓으며 나를 위한 커피를 추출해본다.
진짜 향과 맛을 담은 커피를 위해,
그리고
오늘의 커피처럼 나 자신, 소중한 이들에게 천천히 다정해지기로 한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R-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
2024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