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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4 (수)

공투맘의 제2의 인생극장

죽음의 문턱에서도 다시 웃게 하는 힘


 

어젯밤 둘째 아이가 저녁 먹고 얼마 되지 않아 화장실로 다급히 뛰어갔다.

처음에는 그냥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 거라고 여겼는데 곧이어 화장실에서 힘들어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OO아, 무슨 일이야? 속이 안 좋아?”

“아까 먹은 저녁이 체했나 봐. 가만히 앉아 있어도 토할 것만 같아.”

 

화장실 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아이 옆으로 보이는 변기에는 저녁 식사 후 간식으로 먹은, 미처 소화를 해내지 못한 방울토마토의 조각들이 보인다. 아마 너무 급하게 먹은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둘째의 아기 시절이 떠올랐다.

 

첫째 아이보다 식탐이 많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유독 욕심을 부렸던 둘째였다. 아직 씹는 게 익숙하지 않을 3살, 체리를 먹는데 혹시나 씨가 목에 걸리지는 않을지 걱정되어 가운데 있는 씨를 빼내고 반으로 갈라 접시에 놓아두었다. 체리 하나가 가득 쥐어지는 작은 손으로, 하나씩 야무지게 입으로 가져가 꼭꼭 체리를 씹어 먹는다.

 

갑자기 먹는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나 싶더니, 분주히 접시로 드나들던 손이 보이지 않는다. 엄마의 직감에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에 돌아봤더니 딸은 가만히 자리에 선 채 입술이 파랗게 물들고 있었다. 반으로 갈라놓은 체리를 그대로 꿀꺽 삼킨 모양이다.

 

“어이쿠, 이게 무슨 일이야?”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체리를 집어 던지고 아이의 등이 나의 앞으로 가게 한 뒤, 등을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쓸어 올리듯 세게 두드렸다. 간간이 울음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아직 체리 조각은 딸의 몸에서 탈출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뒤에서 안는 듯한 자세를 취한 후 배 부분을 강하게 압박했다. 순간 툭 하고 바닥에 떨어진 체리 한 조각. 놀란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기 시작했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렸을 때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을 바라보니 엄마와 동생의 긴급했던 상황을 보고 있었던 첫째는 너무 놀라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눈만 빼꼼히 내다보며 울고 있었다. 나에게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엉엉 큰 소리로 울면서 달려오는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첫째를 달래는 사이 잠잠해진 둘째의 울음소리는 나를 또 불안하게 만들었다. 큰아이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둘째를 바라보는 순간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체리를 먹어서 붉게 물들어 있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되어 있었고, 그 얼굴을 옷소매로 쓱 닦고서 그 와중에 또다시 접시 위에 놓인 체리 조각을 입 안에 넣고 있던 것이다. 생사의 고비를 막 넘긴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직 인지 상태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아기가 한 행동이긴 하지만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OO아, 그렇게 체리가 맛있어?”

“엉. 맛있어. 근데 아까 먹던 거 땅에 떨어져서 못 먹어. 지지야.”

 

자신의 숨통을 막고 있었던 바닥에 떨어진 체리 조각을 보면서 하는 말은 더러워 다시 먹지 못한다는 아쉬움뿐이다. 웃음은 나고, 마음은 슬픈 이 기막힌 상황은 내 기억에 영영 잊히지 않는 사건 중 하나다.

 

그랬던 아이가 어느덧 자라 중1이 되었고, 어제는 식사 후 간식으로 먹었던 방울토마토가 탈이었나 보다.

 

”엄마. 체리도, 방울토마토도 이제 먹기 싫어졌어…“

”너는 정말…“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깔깔 웃었지만, 체리 사건 때 숨죽여 울기만 했던 첫째는 여전히 방 안에서 그런 동생을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순간을 맞이한다. 그중 어떤 순간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기도 한다. 체리 때문에 목이 막혀 입술이 파래졌던 순간, 화장실에서 방울토마토를 토하며 힘들어하던 순간, 그때마다 부모로서 마음은 온통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고비를 넘고 나면 다시 태연히,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삶을 이어 나간다.

 

눈물 콧물을 닦으며 또다시 체리를 집어 먹던 아이의 모습은 삶을 향한 본능이 아니었을까? 어른의 시선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일지 몰라도, 그 모습 속에서 ‘살고자 하는 힘’과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위기와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다시 손을 뻗을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던 거다.

 

삶은 언제나 그랬듯 안전하고 평온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순간이 우리를 흔들고, 하늘이 갑자기 하얗게 변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견디고 나면 다시 웃을 수 있고, 다시 먹을 수 있고, 다시 걸어갈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지난 추억들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크고 작은 인생의 갈림길 위에서 시험을 거치며 살아간다. 그 길의 끝에 서 있을 진정한 우승자는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삶을 향해 손을 자신 있게 내밀고, 다시 한번 살아내는 힘을 가진 자가 아닐까?

 


 

 

◆ 약력

· 공투맘의 북랜드 온라인 커뮤니티 대표

· 행복학교 자문위원

· 작가

· 온라인 리더 전문 교육 강사

· 2025 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