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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 (화)

정영희의 건강한 행복

말 한마디가 만드는 헌혈의 온도


헌혈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다릅니다. 그 표정에서 느껴지는 감정 또한 저에게 다르게 다가오지요. '어떤 이유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을까?'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처음 헌혈을 하러 오셨거나 오랜만에 하시는 경우, 궁금증은 조금씩 커집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소중한 피 한 방울, 그 결정 뒤에는 각자의 이유와 선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마감 시간이 임박해 급하게 들어오는 중년의 남성분, "끝났나요? 지금 할 수 있어요?" 헌혈이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네, 가능합니다." 혹시나 하는 웅크렸던 마음이 그제야 놓이는지, 안도의 표정을 짓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며 헌혈하는 동안에도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시는 걸 보면 오히려 제가 죄송해집니다.

 

지혈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가시려는 그분께 괜찮다며 마음 편히 계시라고 하지만, "간호사님들도 어서 퇴근하셔야죠!" 라며 환한 미소를 보이는 배려에 가슴 한편이 훈훈해집니다.

"혈액이 부족하다는 문자를 받고 왔어요. 바쁘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야 할 것 같아서요."

문자 한 통에 달려와 주시는 마음, 환자의 절실함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질 때, 혈액원 간호사로서 감사함을 느끼지요.

 

바늘을 찌를 땐 기도하는 마음으로 채혈합니다. 조금은 덜 아프게, 실수 없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죠. 이런 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오늘 정말 하나도 안 아팠어요. 바늘이 들어갔는지도 몰랐거든요. 안 아프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실 때가 간호사로서 가장 기쁜 순간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말, 따뜻한 말 한마디는 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알게 합니다. 이런 고운 말은 하루 종일 서 있던 다리의 피로조차 잊게 만듭니다.

 

그러나 때로는 힘든 말로 상처받는 일도 있답니다.

 

"빨리 좀 해주세요, 바쁘다고요." 재촉하는 목소리로 불안하게 서 계시는 분.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분. "헌혈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해당 사항 없으니까 묻지 말고 그냥 해요." 질문하기도 전에 퉁명스레 답하시는 분. "좋은 일 하려고 왔는데, 뭐가 이리 복잡해!!" 문진 중 반말로 불평하시는 분. 혈관이 잘 안 보여 난이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요구사항이 많고 질책하시는 분.

 

이런 분들을 대하는 날이면, 유독 퇴근길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헌혈은 분명 숭고한 나눔입니다. 하지만 오가는 말 한마디가 이 일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좌우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는 간호사에게도 헌혈이 가진 의미를 다시 깨닫게 해줍니다.

 

오늘도 저는 헌혈하러 오시는 분들을 기다립니다.

 

누군가의 따뜻한 말을 기대하며, 동시에 차가운 말에도 흔들리지 않을 단단한 마음을 다짐하며.

 


 

 

정영희 작가

 

·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간호사

· 혈액관리본부 직무교육강사

· 2025대한민국 眞心교육대상 수상

· 최경규의 행복학교 자문위원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