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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목)

임지윤의 커피 스토리

커피가 나에겐 그러한 타인이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이해는 나의 시선과 관점이 타인을 향해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지만 실은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사랑하는 시선으로 바라본 후, 그 시선을 돌려 타인을 긴 시간 바라볼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바라보기 쉽지 않으니 타인을 편견이 없이,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가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오해한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내가 그 사람의 생각을, 삶을 이해할 만큼의 경험치가 부족하거나, 나의 생각의 틀 안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판단하거나 평가하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본다.

 

 

커피가 나에겐 그러한 타인이다.

 

사람을 알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이름, 나이, 고향, 성격 등을 알고 관계를 이어가면서 생각, 가치관, 삶에 대한 태도 등도 알아가듯이 한 잔의 컵에 담긴 커피의 향미도 제대로 이해되려면 커피가 되기 전 생두, 원두부터 알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에서 온 생두인지, 생산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로스팅은 어느 정도인지, 언제 로스팅이 되었는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원두 속에 감추어진 향미가 브루잉을 통해 한 잔의 컵 안으로 끄집어내져 그 향미를 잔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 내리는 일요일 오후, 오늘은 어떤 커피의 향미를 잔에 담아볼까 고민하며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온두라스 원두가 들어있는 봉투들을 만져본다. 비가 오니 오늘은 왠지 묵직한 맛을 내고 싶은 콜롬비아로 눈길이 간다. 그리고 중배전으로 로스팅한 갈색의 둥근 콜롬비아 원두를 지그시 바라보며 나지막이 나에게 물어본다.

 

콜롬비아 원두, 얼마나 알고 있어? 이 녀석을 이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리고 칼리타 드리퍼로 핸드드립 한 잔을 내리기로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핸드드립은 브루잉의 방법 중 하나로 브루잉은 원두가루에 물이 닿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원두가루에 닿는 물이 차가운 물이면 콜드브루, 따뜻한 물이 원두가루에 닿아 드리퍼를 통해 추출이 되는 것이 바로 핸드드립이다.

 

콜롬비아라는 녀석은 중배전으로 잘 로스팅하면 과일과 견과류의 복합적인 향과 신맛, 단맛, 쓴맛이 밸런스가 좋게 어우러지는 그런 아이이다. 이런 아이를 이해하고 브루잉을 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드리퍼는 어떤 것으로 사용할 것인지, 분쇄도 정도, 몇 도의 물의 온도가 적절할지, 얼마만큼의 물을 몇 회에 나누어 부을 것인지 등 말이다. 왜냐하면 컵노트라 하는 생두 혹은 로스팅된 원두가 가지고 있는 향과 맛, 질감에 대한 것을 알아야 온전히 그 원두의 향미를 살릴 수 있는 브루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이 커피가루에 닿아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쓰고 떫은맛이 나지 않게, 향과 맛이 어우러질 수 있는 물의 온도와 적절한 농도의 커피를 위한 물을 붓는 양까지 브루잉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들은 모두 브루잉을 할 아이인 원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추출하고자 하는 원두에 대한 경험치가 필요하다. 생두와 원두에 대한 앎이 없고, 경험이 없다면 잔에 어떠한 향미를 담아야 하는지 방향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브루잉을 한다면 나로 인해 콜롬비아는 쓰고 떫은맛의 아이가 되기도 하고, 산미가 도드라지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매력적인 이유, 원두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 고유의 향미를 풀어 한 잔에 녹일 수 있는 남다른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 커피를 찾는 사람들은 그 맛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도

 

바리스타가 되어야 할 시기가 있지 않을까?

 

 

누군가 나를 오해하고 있다면, 또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각자의 관점이 아닌 편견이 없이 나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바리스타.

 

타인에게 너무 차가운 존재는 아니었는지, 너무 뜨거운 존재는 아니었는지.

 

빗방울이 창문에 닿아 흐르는 소리, 과일 향미가 묵직하게 입안으로 들어오는 비 오는 일요일 오후, 나는 나에게 바리스타인지, 타인에게 바리스타인지 콜롬비아 한 잔을 들며 생각해본다.

 

임지윤- KCIGS 센서리 심사위원- 2024 국제요리&제과경연대회 칵테일 라이브 심사위원- 2022 MOC (마스터오브카페) 센서리 심사위원- AST(Authorized SCA Trainer)- Q-GRADER (국제아라비카 감별사)- G-GRADER (국제로부스타 감별사)- 한국외식조리사중앙회 대외협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