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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7 (화)

유은지 작가 에세이

순간을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출근길, 현관문 앞에서 신발장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잠시 망설인다. 구두를 꺼내어 신을지.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설지를 나름 신중하게 고민하는 순간이다.

 

오늘 옷차림에는 구두가 더 어울릴 것 같지만, 두 발은 이미 바닥에 놓인 운동화를 신고 있다.

 

오늘도 걸어서 가고 싶은데, 그러려면 운동화가 편하긴 하겠지.’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치마에 구두보다, 바지에 운동화를 더 즐겨 하기 시작한 것은 출퇴근길에 걷기를 시작하고부터이다. 30분 남짓의 시간을 쪼개어 걷는 것은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유일하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처음엔 걱정스러운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걷기 시작했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때, 걷다 보면 그 문제가 별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는데, 바쁘게 지내느라 크게 여유를 즐기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무엇인가 손에 쥔 것이 없는 아쉬움과 허탈함이 최근 나를 찾아왔다. 무엇을 했다면 성과를 만들어내야 하지만, 성과라는 것은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대가가 아니라는 것, 애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도 있음을 깨닫다 보니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마음까지 오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일까?’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라는 질문을 수명의 기본 값이 100세라는 시대에 3분의 1지점을 지나고 나서야 하고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이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는 목적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평범한 일상을 그저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각자의 길 위해서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사람들 속에 나 역시 걷고 있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걷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걷는 것에 급급했던 것 같다. 출근시간을 맞춰야 했고, 퇴근길에는 집에 가기 바빴다. 그리고 어떤 날은 고민스러운 문제를 생각하다 같은 장소를 여러 번 걷기도 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계절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우두커니 서있던 나무에 잎이 무성해졌다는 것을, 그리고 길가에 앉을 만한 벤치도 있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간을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순간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잘 사는 법이 아닐까.’

 

주변을 볼 수 있는 확장된 눈이 생긴 것. 걸으면서 삶의 방식을 배우고 있다.

 

 

걷다 보면, 걱정에 대한 것도 조금은 다른 시야로 보게 된다. 앞선 걱정으로 늘 불편한 하루를 지내다 보면,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하루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잠깐의 걸음은 지금에 집중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두 발이 땅을 밟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고,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그리고 나를, 걱정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살펴보게 된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 리즈도 어느 날 문득 인생에 회의감에 시달리고 성공한 모든 생활을 접고 여행을 떠난다. 이탈리아에서 잘 먹는 법, 음식을 음미하는 법을 배우고, 인도에서 기도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발리에서 자유롭게 사랑에 빠진다. 자신을 찾아가는 리즈는 포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변하고 싶어서 떠난다고 했다.

 

멀리 떠날 수 없을 때, 삶에서 잠시 스위치 버튼을 끄고, 순간을 즐기고 싶을 때 좋은 것이 걷기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권해본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 현재에 집착하고 순간을 즐기는 것.

 

그것이 삶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삶의 시계는 동일하다. 무한한 삶이 없듯이 매 순간을 즐기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주었으면 한다.

 

나는 그 시간을 걷기를 통해 하고 있는 것 같다.

 

날이 점점 더워지는 여름에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추천하고 싶다.

 

걷다 보면,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우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유은지 작가는

10년이상 개인의 커리어와 마음의 성장을돕는 상담사로 일하며,결국 글쓰기가 삶의 열쇠임을 알게된 뒤로 글을 쓰고있습니다.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삶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합니다.

 

[저서] 마음에 길을 묻다. 치유글약방. 성장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