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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목)

유은지 작가 에세이

초록빛 감각을 깨우는 여름

 

눈이 시리도록 푸른, 초록빛 벼가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다.

 

사락사락.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벼의 끝자락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더운 날씨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초록 벼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 청량감이 묻어난다.

 

몇 해 만에 찾은 시골 풍경은 언제나 한결같다. 자연의 모습을 통해 계절의 소식을 전하고, 도시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로 차분함을 선사한다.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그러하다.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마음이 시골집 풍경 속에 있으면 어느 순간 가라앉게 되니 말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느 봉사자가 와서 그려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벽마다 그려진 꽃들의 소박함에 슬며시 웃어본다. 어린 시절, 시골을 찾으면 집집마다 들러 안부를 묻곤 했는데 이제는 그 시절의 어르신들은 이곳에 없다. 점점 더 한적하게 변해가는 시골의 모습, 주인은 없지만 그대로 남겨진 집터를 보고 있자니 아쉬움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 덕분에 생기를 더해가고 있음에 어딘지 모를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올 수 있는 자연 속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몇 년간 묵혀두고 미루어 두었던 시골집 보수를 위해 가족과 함께 찾았다. 무더운 날씨에 노동이라는 현장이 기다리고 있지만 7월의 푸르름이 가득 넘치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힘이 나는 듯했다.

 

 

최근, 도심을 떠나 시골의 세컨드하우스를 만드는 사람, 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도시에 있으면서도 자연과 가까운 환경을 찾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도심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햇볕에,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화단과 무너진 담을 정리한다. 뜨거운 시간을 피해, 아침 일찍 시작한 보수작업이었지만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일을 하며 이렇게 땀을 흘려본 건 얼마 만인지.’

 

어느 정도 작업이 마무리되어 갈 즈음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 여름 소나기가 뿌려대자 서둘러 마무리하고 처마 지붕 아래로 몸을 옮긴다.

 

 

 

~아악

 

쏟아지는 비를 보며, 한결 더위를 덜어낸다. 자연은 이렇게 대중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내리는 비를 바라본다. 갑자기 내린 비 덕분에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온전히 비를 맞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습기를 머금은 풀냄새를 강하게 맡아본 적이 참 오래된 듯하다. 이런 경험을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느낀 자연의 모습에서 살아있음을 깨닫는 나를 보니 아이러니했다.

 

살아있음을 느꼈다는 것은 아마도 자연 속에서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지기 때문이지 않을까. 빠르게 변하고, 바쁘게 흘러가는 요즈음이지만, 가끔씩 이렇게 자연 속에서 땀을 흘려보는 것도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차에 짐을 싣고 떠나려는데, 동네 주민 한 분이 참외를 한가득 담아주셨다. 감사함에 받아들고, 다시 도시로 향하는 내내 참외 향기가 이렇게 강렬했던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무뎌졌던 감각이 여름의 계절로 깨어난게 아닐까.

 

 

분주하게 살아내느라 바쁘게 지냈다면, 한 번씩 자연과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그 시간을 통해, 지치고, 때로는 단조로운 일상이 조금은 활력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중 -

태양과 바람과 비, 여름과 겨울, 이장은 형언할 수 없이 순수하고 자애로운 만큼 우리에게 영원한 건강과 활기를 준다... 내가 어찌 대지와 교감하지 않겠는가? 나 자신도 부분적으로 대지에서 나온 잎이고 부식토가 아닌가?”

 


 

 

 
유은지 작가는

10년이상 개인의 커리어와 마음의 성장을돕는 상담사로 일하며,결국 글쓰기가 삶의 열쇠임을 알게된 뒤로 글을 쓰고있습니다.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삶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합니다.

 

[저서] 마음에 길을 묻다. 치유글약방. 성장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