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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월)

유은지 작가 에세이

 

누구나 마주하게 될 이별의 시간

 

 

 

하얀 국화꽃이 가득한 길을 걷는다.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검은색으로 위아래를 단장하고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어선 고인 앞에 고개를 숙인다. 남겨진 사람. 눈물로 퉁퉁 불어버린 얼굴을 마주하고는 끝맺음을 할 수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 자리를 돌아선다.

 

7월.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마주한 시간이 벌써 3번째이다. 죽음이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랜 병환으로 생명의 시간을 예상을 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별이라도. 죽음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언제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순간인 듯하다.

 

장마로 비가 계속해서 내린 계절이지만, 비가 거치고 유달리 햇볕이 강렬했던 어느 날.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다. 화장터로 향하는 죽음들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 한 시간 남짓 지나, 한 줌이 되어 나오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본다.

 

한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살아생전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을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자기 삶을 위해 힘썼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음 뒤에는 모두가 똑같이 한 줌이 되어 나오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허무함과 아쉬움이 차오른다. 이런저런 감정들이 뒤섞이는 화장터에서 남겨진 사람들이 보인다. 사랑하는 이가 한 줌의 재가 되는 시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그것이 순리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한다.

 

고인을 애도하며 화장터를 떠나는 검은 행렬들을 보며, 철사 코끼리가 생각났다. 철사 코끼리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울고 있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이다. 책의 주인공 어린 소년 데헷은 아기 코끼리 얌얌이와 함께 지내다 얌얌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세상을 떠난 얌얌이를 그리워하며 데헷은 철사 코끼리를 만드는데, 철사 코끼리는 품에 안아도 따뜻하지 않았고, 날카로운 철사에 상처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데헷은 얌얌이와 철사 코끼리가 닮지 않았음을 깨닫고 대장장이 삼촌을 찾아간다. 대장장이 삼촌은 철사 코끼리를 녹여 작은 종을 만들어주었고, 바람에 종이 흔들릴 때면 아름다운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데헷은 종소리를 들으며, 코끼리 얌얌이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나 있을 이별은 삶에서 마주하는 고통이기도 하다. 데헷에게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철사 코끼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별. 헤어짐은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애도의 시간이 지나기까지는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것 같다. 이러 저리 뒤엉켜 쇳소리를 내는 철사 코끼리를 끌고 다니며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를 보고서야 얌얌이를 보내주어야 한다고 알게 되었을 데헷. 얌얌이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철사 코끼리를 만들었던 것은 자신의 욕심 때문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데헷은 비로소 철사 코끼리를 놓아줄 수 있었다. 용광로에 철사 코끼리를 넣으며, 데헷은 진정한 이별을 했을지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용기를 낸 것이다.

 

다시 볼 수 없는 긴 이별하고도 남겨진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죽음은 한 생명의 삶의 페이지를 마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떠나간 이를 추억하는 시간이기도 한 듯하다. 어떻게 추억하는 가는 남겨진 이들의 몫일 것이다.

 

이별은 받아들임의 과정이라고 했다.

이별 이후의 슬픔. 상실의 시간을 철사 코끼리를 끌어안고 있기보다, 문득문득 추억하며 건강하게 회복하여 가는 것이 서로에 대한 위안과 사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별의 아픔을 마주하고 있을 누군가. 그리고 나.

바람결에 흔들리는 종소리처럼 조금은 가볍게 그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본다.

 


유은지 작가는

10년이상 개인의 커리어와 마음의 성장을돕는 상담사로 일하며,결국 글쓰기가 삶의 열쇠임을 알게된 뒤로 글을 쓰고있습니다. 자기다움을 추구하며 삶을 소소한 일상을 공유합니다.

 

[저서] 마음에 길을 묻다. 치유글약방. 성장글쓰기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