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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수)

김연희 작가 에세이

막아설 수 없는 것


 


“이제 여름도 다 끝났어.”

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치과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그러자 아이는

“아냐. 지금 얼마나 더운데.”

라고 반기를 든다. 사실 햇살을 피해 걷고 있어도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의 반응처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라며 펄쩍 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새벽 공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새벽의 찬 기운을 기대하며 베란다 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 대신 끈적이고 후끈한 열기의 급습을 매번 받으며 얼른 닫고는 했다. 밤이 되어도 한낮에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기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매일 쌓이기만 하는 도시살이에 지쳐갈 때쯤이면 계절은 살금살금 변화를 예고한다.

 

푹푹 찌는 듯한 여름도, 말복(末伏)이 지나면서 새벽이면 선선한 바람이 기가 막히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래전 어느 여름의 작은 깨달음 덕분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과일도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던 시절, 여름엔 수박을 빼놓을 수 없지 않을까. 나만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지만, 말복이 지나면 신기하게도 수박은 속이 잘 무르거나 선명한 붉은 속살도 당도가 떨어졌고,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달라진다고 생각이 들 때는 항상 말복 즈음이었다.

 

내 얘기에 지인은 처서(處暑)는 지나야 아침저녁으로 확연하게 찬 공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삼복 중 마지막인 말복이 지나면 더위가 물러나기 시작하고, 24절기 중 14번째 절기, 처서는 더위가 가시고 일교차가 커지며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는 때라고 한다. 올해 말복(末伏)은 8월 14일, 처서(處暑)는 며칠 후인 22일이다. 절기상으로 보았을 때 지인의 말이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맘때가 되면 여름은 아침과 저녁을 가을에 먼저 내어주나 보다.

 

“자연으로부터 배우십시오. 삼라만상이 저 자신을 성취하는 방식을 보십시오. 불만족이나 불행도 없이 어떻게 생명의 기적을 펼쳐내는지를 바라보십시오.” -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계절의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에크하르트 톨레의 이 말을 실감한다. 한순간 기세를 떨치고 맹렬히 나아가다가도, 때가 되면 물러나 자리를 내어줘야 함을 계절은 스스로 안다. 추위로 온몸을 웅크리게 만들던 겨울이 그러했고, 살인적인 더위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 여름도 곧 그러할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순리대로 산다는 것의 미덕(美德)을 일깨워 준다. 거스르지 않는 삶. 내어주어야 할 때를 아는 것도 아름답지만, 가져야 할 때를 알아도 성급하게 취하지 않는 점은 겸손하기까지 하다. 가을이 여름에 자신이 오고 있음을 새벽 공기로 알려주듯이 그것은 서서히 스며들 듯이 온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내 삶도 그러했으면 한다. 꽉 움켜쥔 손에는 미처 놓아버리지 못한 이기심과 욕심이 여전히 가득하다. 이기심과 욕심은 지금 내 것이 아니거나 불필요한 것을 굳이 가지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이 마음을 놓아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순리라는 배에 올라타고 바람이 부는 대로, 물길이 이끄는 대로 유유히 흐르는 삶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난 그렇게 살고자 한다.


김연희 작가는

글 쓰는 순간이 행복해서 계속 씁니다. 마음과 영혼을 이어주는 글을 통해 의식 성장을 하며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로 살아갑니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 중이며,저서로는 <치유글약방> 2023, <성장글쓰기> 2024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