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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월)

임지윤 작가 에세이

검은 커피, 검붉은 마음

 


외상을 입은 동물과 깊게 베인 마음의 상처가 있는 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오롯이 아픈 상처에만 집중할 수 있는 치유의 시간과 장소가 아닐지 모르겠다.

동물도, 사람도 아픔을 숨기고 외부에 자신의 약함을 들키지 않은 채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장소.

 

“동굴”

 

밝고 따뜻한 빛으로 가득한 곳이 아닌 한 줄기 빛조차 느낄 수 없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 그것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닌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반응하며 회복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위함이 아닐까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의 마음과 자세로 5월부터 준비했던 브루잉 대회 예선전.

첫 도전이었고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출퇴근 전후로 팔과 어깨가 아프도록 드립포트를 들고 치열하게 연습했던 지난 석 달의 시간.

예선 시연 15분 전, 테이스팅을 하며 기물을 준비하는 시간에 추출한 커피의 맛이 연습할 때와 달랐다. 바디감이 밋밋하고 쓴맛이 느껴지는 커피에 난감했다.

급하게 추출 조건을 바꾸느라 기물을 준비하는 시간까지 커피 맛을 수정하는데 쓰다 보니 경기 시간이 부족해졌다. 선수로 처음 참여해 본 경기에 시연 후 눌러야 하는 타이머도 누르지 않는 실수까지 더해져 제한 시간이 초과되었다. 결과는 예선전 탈락.

 

심사할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 몰려왔다.

지난 시간 어떻게 연습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추스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처음인데 잘했다는 말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 그 시기를 보내고 마음을 추스를 때쯤, 업무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직장 상사의 말이 나를 동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AST라는 사람이 대회에서 가져온 결과가 그건데 AST의 권한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건방지다”, “내가 정한 규정 말로 해봐.”

 

대회 결과에 대한 실망으로 온 좌절감, 자책의 감정을 소화시키는 것도 버거웠던 나에게 상사가 한 말은 기어코 나를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교육, 심사를 하는 사람이 선수로 참여한 첫 대회의 결과에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해 주었던 상사의 말은 냉정하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설 수 있으면 서보라며 심장에 꽂는 예리한 비수와도 같았다.

 

퇴근 후, 깜깜한 방안에 혼자 앉아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러다 잠이 들고 다시 출근하고, 웃으며 수업을 하고, 다시 나만의 동굴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눈물이 흐르는 이틀의 시간을 보낸 나에게 브루잉 시험을 마친 수강생이 톡으로 건네 온 말 한마디.

“학원에서 쌤 만난 게 제일 행운”

 

참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말에 감사해 미소가 지어졌다.

센서리 수업도 강사님 수업으로 듣고 싶다며 강사를 바꿔 센서리 수업에서 만나게 된 그는 수업 후 “강사님은 수업을 정말 잘하시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다시 건네주었다.

 

조용하고 어두운 동굴 안에서 타인의 말에 상처받은 나의 마음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통증에 집중해본다.

글쓰기 스승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분의 책 속의 글과 통증과 함께 떠오른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하고 있는 일이 가슴 뛰는 일이라면 그 일을 계속해야 합니다. 어떤 실패를 하였더라도 관계없습니다.” - 나는 행복을 선택했다, 최경규-

 

여전히 아프지만 그 통증을 마음 안에 느껴지는 자극으로 바꿔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하고 있는 일, 앞으로 다시 도전하게 될 일을 가능케 만드는 심장을 뛰게 해주는 자극으로 말이다. 비수와 같은 말로 상처받아 검붉은 피처럼 흘러내린 실패의 경험에 내가 내린 검은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 한 잔을 조용히 흘려보내본다.

그리고 학원에서 선생님을 만난 게 가장 행운이라 말해 준 수강생에게 다음 수업 시간에 내려주고 싶은 커피. 어두운 동굴 안에서 마음의 상처로 검붉은 피를 흘리며 남몰래 울고 있는 분들에게 은은한 꽃향과 깨끗한 산미와 단맛이 느껴지는 검지만 따뜻한 에티오피아 워시드 커피 한 잔에 마음을 담아 건네 본다.


아라비카 커피 생산국 에티오피아

 

커피에서 풍성한 꽃향기와 과일의 산미가 느껴지는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 품종의 대표적인 생산국이다. 19세기 에티오피아의 커피는 하라지역의 야생에서 재배된 하라리(Harari)와 나머지 야생 지역에서 자란 아비시니아(Abyssina) 등급으로 나누었다.

 

오늘날의 에티오피아의 커피 생산 방식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남서부 지역의 야생에서 자란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해 수확량이 적은 야생 커피(Forest coffee)와 에티오피아 커피 생산의 다수를 차지하는 정원 커피(Garden coffee), 대규모 농장에서 커피열매를 재배하는 방식인 농장 커피(Plantation coffee)로 분류한다.

정원 커피는 집 안이나 집 주변에 심은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는 방식으로 가치지기와 비료를 뿌려 커피를 생산한다.

농장 커피는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골라 표준 농법을 이용해 덮기, 가지치기, 비료를 주어 커피 열매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방식이다.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