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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금)

임지윤 작가 에세이

마음속에 결점두

 

“맛있는 밥 한 끼 같이 먹자!” 말을 꺼낸 지인.

 

가족 행사 때문에, 사정이 생겨, 출장이란 이유로... 이상하리만큼

한 친구는 나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면 다른 일이 생겨 취소하기가 일쑤였다. 그렇게 1년 동안 미루어지던 약속을 다시 잡은 친구. 이번에는 지켜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속을 확인하려 보낸 톡, 돌아온 친구의 답장은 급한 일정으로 다음 주로 미룰 수 있냐는 내용이었다.

친구의 답장으로 순간 마음속에서 화가 일었다.

 

이쯤 되면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는 것이고, 이렇게 매번 취소하는 것은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불쾌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여유 있을 때 맛있는 밥 먹자.”라고 답장을 보냈었지만, 이번만큼은 화가 난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친구의 미안하다는 사과에도 말뿐이었던 약속에 서서히 무너지던 신뢰가 산산조각이 나니 그 사과는 의미 없는 말로 들렸다.

 

친구와 톡을 주고받은 후, 좋지 않은 마음을 감추고 강의장으로 향했다.

 

로스팅 수업 첫날,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로스팅을 맛있게 잘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생각하지 않은 질문에 강의실 안은 잠시 정적이 흐른다.

그 정적 사이로 슬그머니 친구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다시 올라와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로스팅을 할 생두를 선택하고, 제때 적절한 화력을 주는 것이 중요하겠죠?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로스팅할 생두에서 결점두를 제거하는 작업이 중요해요.

곰팡이가 핀 생두, 벌레 먹은 생두, 썩은 생두, 깨진 생두 등 커피의 향미에 부정적인 향미를 가져오는 결점두를 로스팅 전에 골라내지 않으면 로스팅을 아무리 잘해도 골라내지 않은 결점두가 들어간 커피는 불쾌한 부정적인 향미를 가질 수밖에 없어요.

오늘은 콜롬비아 생두를 로스팅해 볼 거예요. 맛있는 커피가 되도록 로스팅 전에 결점두를 골라내볼까요?“

 

이야기를 끝내고 콜롬비아 생두를 계량하고 수강생들과 함께 결점두를 찾아 골라낸다.

테이블에 펼쳐놓은 생두들 사이에서 깨진 생두, 벌레 먹은 결점두가 보인다.

깨진 생두를 결점두로 분류해 골라내는 이유는 깨진 부분의 뾰족한 단면이 동글동글한 다른 부분들에 비해 열을 더 빨리 받아 탄 맛과 탄 향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깨진 생두들을 고르며 문득 지인의 사과에도 화가 났던 나의 마음이 생각났다.

탄 향 같은 씁쓸하고 불쾌한 감정 “화”를 결점두 보듯 잠시 들여다본다.


친구의 말에 나의 어떤 부분이 건드려져 화가 났을까?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며 말했던 가족행사, 사정, 출장이란 이유들은 친구의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일들의 우선순위 저울질에서 나보다 중요하다 여겨지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친구에게 나와의 약속은 자신의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꼭 넣어야할 일, 더 마음이 가는 일들 중에서 골라내어진 결점두가 된 것 같아 올라온 “화”라는 부정적인 감정.

 

잠시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니, 좋은 향미가 가득한 감정이 되려면 결점두를 골라내듯 마음속에 들어온 화난 감정을 골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점두를 찾으려는 마음, 그 의지에 따라 더 잘 보이고 골라내어져 좋은 생두만으로 로스팅할 수 있다. 그렇게 로스팅이 된 원두로 내려진 커피는 좋은 향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시간과 노력으로 로스팅 되어 만들어진 커피란 우리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약속과 신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더 풍만하고 좋은 향기가 나는 법이 아닐까?

누구나 자기의 시간은 소중한 법,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 공유하지 않으려는 사람과 내 삶의 결을 맞추려는 노력은 어쩌면 시간 낭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이다.

 


 

 

[대한민국교육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