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 작가가 이런 질문을 던진 걸 어디선가 본 적 있다. "못하는 걸 잘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할까? 잘하는 걸 더 잘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할까?" 이 질문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후자에 손을 들었다. 내 삶이 이미 그렇게 흘러왔으니까. 동물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내과와 외과, 두 영역을 마주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외과적 감각이 좋지 않다. 손의 민첩함이나 섬세함이 부족하다. 그 부분을 잘하게 만들려고 애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에 내과 공부를 더 했다. 임상증례를 더 들여다보고, 감별진단의 논리를 단단히 쌓았다. 지금 내과 케이스 앞에서는 자신 있다. 외과가 약한 건 여전하지만, 내과 실력은 확실히 뾰족해졌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글쓰기 잠재력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알고 나서는 더 강화했다. 더 읽고 더 썼다. 그 결과 수의사이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외과를 갈고닦는 데 썼다면 없었을 삶이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이 있다. "부족한 과목을 보충해라." 성적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과목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 당연한 공부법으로 통한다. 그 뒤에는 교육 철학이 있다. 민주 시민을 양성하
비워야 채워지는 삶의이치 떠나보내는 계절도, 헤어지는 인연도 이젠 익숙해야 할 시간이련만 늘 떠나보내는 마음에 서글퍼집니다. 여름을 위한 봄과의 이별가을을 위한 여름과의 이별 겨울을 위한 여름과의 이별 봄을 위한 겨울과의 이별 좋았던 추억과의 이별 행복했던 시간과의 이별 사랑했던 기억과의 이별 좋아했던 인연과의 이별 슬픔에 목맸던 시간과 이별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그 해는 활짝 핀 개나리가 유난히 예뻤던 봄이었습니다. 딸아이는 할머니가 선물로 주신 책가방을 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마도 아이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마냥 들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도 아이가 학생이 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눈에 자식의 모습은 늘 아가로만 생각되나 봅니다. 학교 정문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아이들보다 더 설레고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매일 같은 시간에 아이들을 기다리는, 엄마들은 서로를 알아갑니다. 축구, 야구 운동 모임으로 친밀한 시간을 만들며, 발레학원, 피아노 학원의 이야기기로 꽃을 피웁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 학부모들은 교내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또 다른 인연의 고리를 연결해 갑니다.
후회는 과거를 향하지만, 질문은 미래를 향한다 노트북을 펼쳐 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막막한 마음에 교수님께 물었다. "요즘 느끼는 감정에 대해 써 보세요." 그 말 한마디에 예상치 못한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정리됐다고 착각한다. 쿨 하게 잊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다짐하지만, 잠들기 전 불현듯,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또 그 장면이 떠오른다.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틈을 찾아 결국 흘러나오고 만다. 얼마 전 나는 오래 준비해온 어떤 기회 앞에 섰다가, 스스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마주했다. 충분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는데, 결정적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당황한 나머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지 않았고, 아는 것조차 말하지 못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것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왜 그랬을까, 한동안 자문했다. 예상과 다른 상황이 펼쳐지자 마음속 어딘가에서 '난 안 돼'라는 신호가 먼저 켜진 것은 아니었을지. 그 신호가 켜지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다. 포기는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먼
내가 어렸을 때 매우 재미있었던 놀이 중의 하나는 꼬리잡기였다. 별도의 기구도 필요 없고 다만 몇 명의 인원만 있으면 되었다. 두 팀으로 나누어 앞 사람의 허리를 잡아 줄을 만든 다음 맨 앞 사람이 상대편의 꼬리를 잡기만 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꼬리를 붙잡혀서 지는 것이 아니라 줄이 끊어져서 지곤 했다. 그러니까 게임의 승패는 팀의 민첩성에도 달려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결속력이었다. 줄은 언제나 약한 부분이 끊어졌다. 사람에 따라 감기의 증상도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목부터 어떤 이는 코부터 그리고 어떤 이는 허리부터 아프기 시작한다. 이것은 그 부위가 가장 약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 몸이 공격을 받을 때 항상 약한 부분에서 탈이 나는 것이다. 나의 경우 감기 증상은 언제나 목에서 시작된다. 생후 백일이 갓 지났을 무렵 천식이 있다고 부모님은 돌팔이의 말을 듣고 빙초산에 갑오징어 뼈의 분말을 개 먹이려 하셨고 다행히 토하기는 했으나 그래서인지 어려서부터 목이 유독 약하다. 19세기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 1803~1873)의 유명한 ‘최소율의 법칙’ 이라는 이론이 있다. 식물의 생장은 가장 풍부한 영양
“피구장 위에서 배운 가장 큰 교육” “살리는 말, 세우는 말” 점심시간마다 아이들이 혹시 다칠까 봐 스스로 운동장에 나가 생활지도를 하는 우리 학교 행정실장이 들려준 이야기다. 우리 학교에는 처음에 피구장이 하나뿐이었다. 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했지만, 학급이 많다 보니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피구장 옆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긴 잘 쓰지도 않아요. 모기만 많아요. 여기를 피구장으로 만들어 주세요." 그 말은 받아들여졌고, 연못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피구장이 생겼다. 아이들이 제안하고, 아이들이 만든 공간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새 피구장은 운동장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했고, 안전을 위해 펜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펜스가 공을 완전히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공은 자주 운동장 아래로 넘어갔고, 한 번 넘어가면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운동장에 있는 형들에게 공을 부탁하게 되었다. 반복되는 상황, 반복되는 부탁. 그 속에서 그날의 일이 생겨났다. 점심시간, 공 하나가 또 운동장으로 넘어갔다. 아이들이 공이 넘어간 나무 울타리쪽으로 우르르 몰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WBC(World Baseball Classic)에서 17년 만에 1라운드를 통과해 8강이 겨루는 2라운드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기적과 같이 회생하여 이루어낸 성취에 온통 들떠 미국 마이애미에서의 2라운드에 대한 기대에 충만해 있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도미니카공화국에 0대 10, 7회 콜드게임이라는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대한민국 야구가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오른 토너먼트 무대였기에 이 무기력한 결과는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말처럼 매우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경기 내용 또한 단순한 점수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투타 모두에서 압도당했고, 단 2안타에 그치며 반격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다는 점은 한순간의 성취에 대한 기쁨을 완전히 상실한 채 뼈 아픈 구조적 한계를 드러냄에 커다란 교훈을 얻었고 향후 이에 대한 대비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 이 패배는 실패가 아니라 ‘교과서’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경기에서 청소년 교육에 적용할 수 있는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준비의 질이 결과를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도미니카공화국은 메이저리그 올스타 경험을 다수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은 어디까지인가? 이미 한계를 넘어선 듯하다. 하루건너 한 건씩 발생하다시피 하는 대형 사고는 그것이 화재이든, 교통사고든, 산불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수준을 넘어 인재(人災)에 의한 비극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대형 건물 화재 사건만 해도 우리는 이미 뼈아픈 대가를 치른 적이 있다. 아리셀 공장 화재는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니라, 안전을 비용으로 취급해 온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사고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최근 대전 자동차 부품 공장인 안전공업 화재는 그 규모나 인명 피해가 상당하다. 또다시 반복된 사건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달라졌는가? 지난 세월호 참사 이후 매번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외쳐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경각심은 사라지고, 현장은 다시 ‘속도’와 ‘비용’의 논리에 지배당한다. 이는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 인성’의 문제로 귀결될 정도다. 안전 인성이란 규정을 지키는 태도를 넘어, 타인의 생명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스스로 지키려는 내면의 기준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이 기준이 취약하다 못해 실종된 상태라
나는 수의사이자 글 쓰는 사람이다. 수의사로 살다 보면 낯선 케이스를 자주 만난다. 처음 해보는 시술, 익숙지 않은 증상, 예상과 다른 반응. 처음엔 손이 떨린다. 두 번째엔 조금 덜 떨린다. 세 번째엔 요령이 생긴다. 그렇게 실력이 쌓인다. 시행착오가 곧 성장이다. 실패 없이 실력이 늘 수는 없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작가로서 항상 좋은 글을 쓸 순 없다. 특히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더 그랬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글, 형편없다 싶은 글도 수없이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알았다. 내 글이 구려 보인다는 건, 더 나은 글이 어떤 것인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뜻이라는 걸. 그 불만족이 나를 다음 단계로 밀어올리는 신호였다. 쓰지 않았다면 나아질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때 필요했던 게 바로 이 정신이었다. 지금 소개할 두 글자. Not Yet. 스탠퍼드 심리학자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는 성장 마인드셋 연구에서 미국 시카고의 한 고등학교 사례를 소개한다. 그 학교는 낙제 점수를 'F(Failed)'가 아닌 'NY(Not Yet)'로 표기한다고 한다. '실패'가 아니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다. 두 글자의 차이가 작아 보이지만, 그
머뭇거림 앞에서의 독백 새로운 도전 앞에서 머뭇거려본 적, 저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저는, 작년부터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 참여해 보는 것. 막상 모집 공고를 보는 순간, 두근거리는 마음 뒤로 망설임이 조용히 따라붙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은데, 다음에 할까. 영어 면접도 있는데, 괜히 지원했다가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닐까. 짙어지는 두려움은 그렇게, 말없이 자신감을 시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의 한 구절이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이 세상에 완벽하게 준비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는 건 가능성뿐이야. 시도하지 않고는 알 수가 없어. 그러니 두려움 따윈 던져버리고 부딪쳐보렴. 스스로를 믿어봐." 『바보 빅터』에서 레이첼 선생이 10년 만에 만난 제자에게 건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말이 저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살아보니 그랬습니다. 처음부터 정답을 알고 시작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변하는 세상 속에서 오늘에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기회는 현실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가진 것을 잃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인생 녹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익숙한 음량인데도 늘 어딘가 아쉬움이 묻어 있습니다.녹음된 방송을 다시 듣는 일이 참 어색하기만 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는 시간은 긴장도 되지만 많은 의미를 부여해 줍니다. 인생도 녹음해 두었다가 다시 한번 들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지나간 시절 중 가장 그리웠던 시절은 언제인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지나치게 붙들었는지, 무엇이 그토록 눈부셨는지에 대한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먼저 떠오르는 것은 20대의 봄입니다. 대학교 강의실, 창문 너머로 스며들던 햇살, 강의실로 향하던 가벼운 발걸음,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던 젊음의 기세. 시간은 멈춰 있을 것 같았고, 하고 싶은 공부는 끝없이 많았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누군가는 질문을 했고, 누군가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고, 누군가는 봄이 오는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누군가가 조용히 쪽지를 건넸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별 미팅이 있다는 짧은 문장의 종이그 순간 교수님의 강의보다 더 크게 들린 것은 내 심장 소리였습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저 좋아서, 그저 설렜던, 가슴이 콩콩거리던 그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