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 공룡이 추워 보여요.” 아이의 말은 언제나 정확하다. 운동장 한켠에 서 있던 공룡 동상들은 햇볕과 비를 견디며 조금씩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이들 눈에는 그 모습이 ‘낡았다’가 아니라 ‘춥다’로 보였다. 아이의 마음이 먼저 추워질 때, 세상은 이미 많이 낡아 있다. 나는 공룡을 한 번 보고, 아이를 한 번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러다간 공룡이 백색공룡이 되게 생겼다.” 아이들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는 공룡을 걱정하는 마음이 분명히 있었다. 어른들보다 먼저, 아이들은 학교 풍경의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공룡을 다시 칠하려면 3천만 원이 든다고 했다.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우리 학교는 수업료가 전국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재정은 늘 빠듯하다. 인건비와 기본 지출을 제하고 나면 1년에 남는 예산은 약 1억 원. 그 돈으로 학교 수리와 각종 사업을 감당해야 한다. 외벽 페인트 공사만 해도 1억 3천만 원이라는 견적을 받았다.그마저도 마련하기 어려워 몇 해를 미뤄야 했다. 그러는 사이, 학교 곳곳의 벽은 많이 낡아 페인트 껍데기가 너덜너덜 벗겨지는 곳이 생겼다. 아이들이 매일 오가는 공간이었다. 결국 더는 미룰 수 없어 외
대한민국 교육은 지금 어느 길 위에 서 있는가? 과도한 경쟁, 치열한 입시 중심, 아이들의 정서와 생태 취약 — 이러한 현실을 한마디 고사성어로 요약한다면 지록위마(指鹿爲馬)라 할 것이다. 이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옳고 그름이 뒤바뀐 채 권력이나 결과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는 상황을 비유한다. 오늘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도 진정한 학습과 성장보다 성적과 입시라는 ‘결과’가 기준이 되어 옳고 그름이 전도되고 있지 않은가? 본고에서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교육 현안을 고전의 지혜에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지록위마’ 교육을 넘는 길 — 공자의 仁과 學 스승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서 “학이즉사불망(學而不思則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則殆)”라 했다. 이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배움의 양적 확장엔 성공했으나, 사고의 깊이, 인격의 성찰을 놓쳐 왔다. 왜냐면 점수로 말해지는 경쟁의 모습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방법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 암기 중심이 아닌 사유하는 학습, 내적 동기 중심으로 교육의 기준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라 할 것이
세계 선진국들의 경우 영국은 올해를 ‘독서의 해’로 지정하여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으며 프랑스는 학교·가정 내 독서 습관 형성 방안 홍보에 나서 ‘독서교육’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 교육부도 올해 처음으로 별도의 독서교육 예산을 82억원 편성해 독서 문화 조성에 나서고 있다. 최근 영국의 국민 캠페인 “올인하자(Go All In)”와 프랑스 교육부의 평생 독서 습관 형성을 지원하기 위한 “함께 읽기: 조기 독서 증진 방안”이라는 보도자료 발간은 모두가 독서교육을 독려하는 한편,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과 자원을 공유하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독서교육 강화에 발 벗고 나서 ‘책’을 읽는 평생 습관과 독서를 국가적으로 확산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독서를 ‘개인이 노력하면 되는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아이가 책을 안 읽으면 가정을 탓하고, 학업 부진이 나타나면 학교를 지적한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사회는 과연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설계돼 있는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솔직히 이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최근 한 지자체와 교육계의 협치를 통한 ‘독서국가’ 구상은 이 오래된
◇ 지식의 과잉과 문해력의 빈곤 우리의 모든 오감이 절실하게 느끼는 지능정보사회의 빠른 도래와 더불어 교육 현장에는 디지털 교과서와 생성형 AI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으로서 목격한 최근 우리 학교 교실의 풍경은 ‘에듀테크’의 도래가 빚어낼 거대한 폭풍 전야와 같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편성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지만 기술적 풍요 뒤에 가려진 현실적 문제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아이들은 텍스트의 표층적 정보는 수용하지만, 맥락(Context)을 관통하는 심층적 읽기는 한계를 보이는 ‘실질적 문해력 결핍’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국어 성적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뇌가 ‘훑어읽기’와 ‘단기적 보상’에 최적화되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딥 리딩(Deep Reading: 인지과학자 메리언 울프가 강조한 사유하며 읽는 행위)’ 역량이 감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알고리즘을 초월하는 ‘질문하는 힘’의 필요 현재 우리가 공존하는 AI는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온 ‘추론’과 ‘창작’까지 모사하고 있습니다. AI가 정교한 알고리즘을 통해 최적의 ‘답
헌혈의 문턱을 낮추는 작은 계기- 팬 문화가 만든 변화 헌혈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직 경험이 없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주사바늘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고, 어쩌면 헌혈과 관련된 의미 없는 불안감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니면 그저 기회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죠. 맞아요. 무언가 처음 시도할 때는 작은 계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자의든 타의든 경험을 시작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말이죠. 최근 유명한 기획사의 제안으로 이색적인 헌혈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엔 하이픈이라는 그룹인데요. 이들의 모티브가 ‘뱀파이어’라고 합니다. 피를 마시는 가수와 헌혈과의 연결, 참 흥미롭지 않나요? 서울에 있는 일부 헌혈의 집에서만 진행된 헌혈 이벤트인데요. 제가 근무하고 있는 센터도 포함되었습니다. 헌혈하면 그룹 멤버들의 미공개 포토카드와 ‘blood bite’글자가 새겨진 초콜릿을 증정하는 거예요. 게다가 헌혈의 집 내부에는 앨범과 그들의 사진, 소품들로 특별한 공간연출도 하였습니다. 경험과 재미를 함께 할 수 있게 말이죠. 이 특별한 프로모션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에서 10대, 20대 팬클럽 회원들이 모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무려 11시간이나 배와 버스를 타고 온 고등학생도
한 제자가 오래 신어 구멍이 난 고무신을 버리고 새 신발을 샀다. 싱글벙글하며 기분 좋아하는 제자에게 스승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 너무하십니다. 겨우 고무신 한 켤레를 가지고 꾸중을 하십니까? 그것도 몇 년 만에 샀는데요.” 제자가 볼멘소리를 하자 스승은 언성을 높였다. “어리석은 녀석 같으니라고, 고무신 한 켤레가 얼마나 두려운 줄 모르는구나. 새 신을 신다보면 자연 새 양말을 찾게 되고, 새 양말을 신으면 새 옷에 눈이 가게 된다. 그뿐이겠느냐? 새 신발에 새 양말, 새 옷까지 입고 나면 어느새 마음도 슬며시 들떠서 자꾸 바깥출입을 하게 된다. 그러면 어찌 공부가 되겠느냐?” 아직도 납득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제자에게 스승의 훈계는 계속 되었다. “그렇게 옷차림을 말쑥하게 하려면 책보다는 거울을 한 번 더 보게 되고 그러면 마음공부는 이미 글러버리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 고무신 한 켤레가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나도 그 제자처럼 스승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안 드는 바는 아니나,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모름지기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은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는 교훈쯤으로 공감되는 바가 크다. 문제는
안녕하세요, 경기도의회 이은주 (교육행정위원회)입니다. 교육행정자로서 저는 매일 아침 경기도의 교육 현장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제보다 나은 환경에서 공부 하는가? 아이들이 마주할 미래는 오늘보다 따뜻한가?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정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저는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배웠고,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으로서 예산과 조례라는 차가운 활자 속에 아이들의 뜨거운 꿈을 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습니다. 지방행정학 박사과정를 마무리하고 있고 구리교육문화원장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지역사회 교육 공동체의 밑바닥 민심을 읽어냈고, 때로는 부모의 마음으로, 때로는 행정가의 시선으로 우리 교육의 명암을 목격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동안의 의정 활동 기록과 현장에서 체험한 수많은 지혜의 조각들을 모아, 대한민국교육신문 독자 여러분과 함께 깊은 성찰과 대화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칼럼은 단순히 정책을 홍보하는 자리가 절대 아닙니다. 교육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세밀한 결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현장 기록지’이자, 대한민국 현재와 미래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의 장이 될
요즘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모인 전국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는 설렘으로 충만하게 된다. 《왔다! 내 손주》의 방송 프로그램이 기다려지는 상황에서다. 이 방송은 해외에 사는 손주들이 한국의 조부모를 찾아오는 여정을 따라가며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공감과 학습의 순간을 포착하는 OBS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가족 예능을 넘어, 우리가 잊고 사는 가족과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프로그램의 기본 구조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다. 비행기를 타고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으로 온 손주들은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며 서로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부딪히고, 웃음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잔잔한 과정을 심도 있게 보여 준다. 외국에서 자란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 아이들을 처음(또는 오랜만에) 보는 조부모의 반응은 때로는 낯설고 서툴지만, 그 과정 자체가 교육적 상호작용으로 더없이 귀중한 경험이 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단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격대교육(intergenerational learning)이 자연스러운 현장을 목격한다. 학술 연구는 다세대 학습이
어느 주말, 수면을 다시 생각하다 어느 바쁜 주말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몰려온 피로에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즈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CRM 상담사의 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늘 헌혈하신 000헌혈자님이 지금 어지러워 버스 정류장에 계신다고 합니다. 연결해드릴까요?” “네 ” 짧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헌혈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버스 정류장이요.” “지금 어디가 가장 불편하세요?” “속이 좀 안 좋고, 어지러워요” “의자에 앉아 계시고, 가능하다면 누워서 다리 들고 계세요. 제가 지금 바로 갈께요.” 목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태인지 느껴졌습니다. 이동 혈압계를 챙겨 들고, 급히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헌혈 후 대부분은 특별한 증상 없이 귀가하지만 간혹 오늘처럼 헌혈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비교적 흔한 증상이 혈관미주신경반응인데요. 과도한 긴장이나 불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 나타나게 되죠. 특히 처음이거나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때 헌혈하는 경우 그럴 수 있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의 유일한 추종자 산초 판사는 어느 섬의 태수가 되었다. 진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산초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법령을 발표 했다. “이 섬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여기 왜 왔느냐?'라고 묻는다. 진실을 말하면 통과시킨다. 거짓을 말하면 처형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국경을 넘어왔다. 병사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저는 처형당하러 왔습니다.” 병사는 당황했다. 이 남자를 통과시키면 그는 거짓말을 한 셈이므로 처형해야 한다. 하지만 처형을 한다면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셈이므로 처형할 수 없다. 병사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산초에게 달려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산초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를 통과시키게.” “네?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선을 베푸는 것이 악을 베푸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네. 이는 내가 머리를 쥐어짜서 내린 결론이 아니야. 내가 이 섬의 태수로 오기 전날 밤, 돈키호테가 수차례 가르쳐 준 마음가짐이 생각났기 때문이지. 그것은 어떤 경우에든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자비를 취하라는 것이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