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급조절 지난 15일, 다니고 있는 음악학원에서 색소폰 연주회가 있었다. 연주회라고 해도 정식 음악회가 아니다. 크리스마스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같은 음악학원에서 배우고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평소 연습하는 곡을 발표하는 이벤트였다. 나도 이중주와 사중주를 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중주는 여름부터, 이중주는 10월말부터 열심히 연습했으니 연주가 끝난 후에 해냈다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 반작용인지 다음 날은 아무 것도 할 생각이 없고 다행히 일도 없는 날이니 오랜만에 하루종일 쉬고 있었다. '완급조절'이라는 말이 있다. 야구에서, 투수가 모든 타자에게 전력을 다해 던지지 않고 상대에 따라 힘을 조절하는 일, 즉 강타자에게는 전력을 다하여 던지고, 상대적으로 타격이 약한 타자에게는 힘을 아끼며 던지는 경우를 이른다. 원래 있던 그런 뜻에서 발전되어 일과 휴식의 균형을 잘 맞춰서 활력을 다시 얻는 것도 의미한다. 평소 잘하려고 하는 사람은 더욱 잘 쉬는 것이 어렵다. 조금 쉬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도 다른 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휴식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부정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너지 없이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자동
나와 마주하는 법 연두 빛 표지의 다이어리를 선물로 받았다. 2025년을 잘 맞이했으면 한다는 지인의 선물이었다. 늘 새해가 가까워질 무렵이면, 달력과 스케줄러를 사기 위해 서점을 찾는데 올해는 지인의 선물로 좀 더 이른 시점에 2025년의 시간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나의 2024년은 어떠했었는지를 말이다. 정말 이상하게도 2024년 한 해는 그 어느 해보다 빠르게 시간이 흐른 듯하다. 시간에 쫒기며 살아서인지, 등 떠밀리듯 타인에 이끌려 행했던 일이 많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지나버린 것 같아 여러 면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 해 열심히 사용했던 다이어리를 펼쳐본다. 24년은 이렇게 살아보겠다는 다짐과 각 월마다 써놓았던 여러 이슈들. 그리고 계획들이 가득하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며 설레었던 시간도 있었고, 힘들게 지나간 순간들도 있었다. 기록으로 남겨진 12개월의 시간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나를 찾아본다. 외부의 자극이 많은 일상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은 작업인 듯하다. 지나간 날들이 모두 기억나지도 않고, 그 때의 내가 어떠했는지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쉽게 생각나지 않는 일들도 많다. 그
사는 게 힘들다는 너에게 겨울이 깊어갈수록 어둠은 일찍 찾아온다. 집으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며 감탄을 한다.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이 낮게 떠 있는 달이 무언가에 서서히 잡아먹히고 있는 것처럼 한쪽 귀퉁이가 잘려나간 채 어둠을 밝히고 있는 모양이 동화의 한 장면 같다. 문득, “저 달이 아름다운 동화처럼 느껴질 수 있을 만큼 나의 하루가 괜찮았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랬다. 아침부터 조금 전까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며 그들과 유쾌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진 감사한 날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이토록 충만한 하루를 보냈지만 사실 그렇지 못했을 누군가 때문에 조금은 마음이 쓰이고 아팠다. 며칠 전, 가까이 지내는 동생이 “왜 나만 사는 게 이렇게 힘들까요?”라고 했던 말이 가슴에 얹혀서 내려가지 않는다. 꾹꾹 눌러왔던 마음을 풀어내는 그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스쳐 갔다. 동생도 저 달을 보았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한없이 슬퍼 보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누구는 충만함을, 누군가는 슬픔을 느꼈겠다고 생각하니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살아낸다는 말
색으로 짐작할 수 있는 생두의 나이 겨울, 시린 바람이 사람의 온기를 찾아 불어오듯 외투 속으로 파고든다. 차가운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지하철로 향한다. 북적이지 않는 따뜻한 지하철 안, 봄처럼 밝은 모자, 고운 색의 목도리, 두꺼운 외투, 부츠로 무장한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철이 출발하자 겨울바람, 앙상한 마른 가지에 붙어있던 나뭇잎이 흔들리듯 할머니 한 분이 휘청하신다. 반대쪽 문에 몸을 기대 서있던 비슷한 연배의 여성분이 “할머니, 여기 기대 서셔.”라고 말하며 할머니를 잡아 본인이 서있던 자리를 양보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잠시 기대 서계시다 이내 다시 처음 있던 곳으로 걸어가 꼿꼿하게 서신다. 생기가 넘치는 한 여름의 나무처럼 다시는 흔들리지 않을 듯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잠시 머물며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짧은 인연이었을지라도, 오늘은 물끄러미 바라보게 된다. 지하철 안,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 얼굴에서 나이와 상관없는 각자만의 생기가 느껴진다. 생두는 보관되는 기간에 따라 향미가 생기있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고, 점점 사라지는 시기가 있지만 사람은 그러하지 않음을 보게 된다. 생두는 그린빈(Green bean)이라고도 하는데
‘연말연시(年末年始)’는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연말’과 ‘연시’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도, 이 둘이 묶여 ‘연말연시’라는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이는 김소월 시인이 <산유화>에서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고 진다고 말했듯, 순환하는 섭리처럼 우리 한 해의 삶도 끝이 곧 시작인 하나의 고리와도 같기 때문일 것이다. ‘연말’에는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게 되고, ‘연시’에는 펼쳐질 한 해를 조망하게 되어 우리의 시선이 반대인 것 같지만, 결국 하나의 우리 삶으로 묶여 있다. 연말연시에는 감성이 풍부해진다. ‘연말(年末) 감성’은 보람일 수도 있고, 슬픔이나 그리움일 수도, 후회일 수도 있다. ‘연시(年始) 감성’은 누구에게나 희망이고, 까닭 모를, 아니 아직은 까닭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소망일 수도 있고, 한껏 충만한 힘이다. 이러한 감성 속에 마무리와 시작이 이어지다 보니 연말연시에는 인사말을 건넬 기회도 많고, 누군가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연말연시에 하는 인사말도 정해져 있을까? 우리가 흔히 듣고 하게 되는 인사말이 있으니 무언가 정해져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어 예절 자료의 ‘특정한
12월과 컵 안의 물 12월도 중순이 되었다. 일본어로 12월은 ‘시와수’라는 별명이 있고, 한자로 ‘師走’라고 쓴다. 그 어원은 몇 가지 추정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안에 가장 유력한 견해에 따르면 ‘스님(師)이 바쁘게 달리는 달’이라는 뜻이다. 옛 일본에서는 매년 연말에 불명회(佛明会)라는 법회가 있었다. 스님들이 각지의 사찰을 돌며 법회를 하거나 겨울철에 스님을 초청해 독경 등 불사를 하는 집이 많았다는 이유로 12월은 스님이 바빠 그런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다. 현대 일본에서는 스님을 집에 부르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별명은 여전히 남아 있고, 師를 선생님이라고 해석해 ‘평소 유유히 걷는 선생님도 바빠서 달리는 12월’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쁜 사람은 선생님뿐이 아니다. 이 시기는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송년회가 많고 모두가 여러모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이기 때문이다. 자주 듣는 말이지만 바쁘다는 말이 한자로 쓰면 ‘忙’, 마음을 잃는다고 쓰인다.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표현도 있듯이 바쁘면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시기라 오히려 조용히 자기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올해 초, 나는 번역서 1권, 내가 집필하는
감정을 마주 하는 것 다양한 색채들이 하얀 종이 위를 가득 채운다. 어느새 종이는 그림으로 채워졌고 그림 위에 나타내고 싶었던 감정의 이름을 적는다. 감정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며칠 전 참여한 세미나의 주제는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감정’이었다. 감정은 우리의 행동과 선택, 그리고 대인관계에 깊은 영향을 준다. 흔히 감정을 기분이나 느낌에 비유하지만, 감정은 그 이상의 것으로 우리의 경험을 만들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기본적인 감정으로는 기쁨, 슬픔, 분노, 외로움, 부담감, 열등감, 두려움 등이 있다. 다양한 감정은 진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두려움은 위험을 인식하고 피할 수 있도록 하며, 기쁨은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감정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호나 메시지를 주기도 하고, 상황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하도록 돕는다. 감정이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때문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주고받는 감정을 통해 상대와 연결되기도 하고, 서로를 공감하기도 한다. 관계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내 길을 가고 있는가? “나는 내 길을 가고 있는가? 누군가의 길을 무작정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닐까?” 가파른 산길을 오른 지 얼마나 되었을까? 뜬금없는 질문이 헉헉거리며 내뱉는 거친 숨과 함께 불쑥 올라온다. 이마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고, 서늘한 겨울바람이 한 번쯤 지나가 주길 바라게 된다. 내 곁을 바람이 지날 때면, 후끈 달아오른 열기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느낌을 온몸으로 즐기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제대로 즐기지 못 할지도 모른다.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질문이다. 어떤 일이든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가 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 휘둘리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닌지, 내가 아닌 타인의 무대에서 판을 펼치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계발 열풍이 수면 위로 올라와 그 어느 때보다 SNS를 뜨겁게 달구며 많은 사람을 흡수하던 몇 년 전부터 이런 질문은 함께했다. 이 시기에 각종 대형 커뮤니티가 온라인상에서 급속도로 번지며 영향력을 키우고 항해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배움의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성장과 성공에 대한 목마름으로 그 배에 올라탔고, 나 또한 신세계를 만난 탐험가처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발을 들여놓는다
베스트 오브 파나마 (Best of Panama)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며 커피를 배우기 시작한 그녀. 수업 마지막 날, 시험을 마치고 종이 가방을 건넨다. “열어봐도 돼요?”라며 안을 들여다보니 원두 봉투가 담겨있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수업 시간, 파마나 게이샤를 핸드드립으로 내려주며 ”이 커피 한 잔 마시면, 다른 커피들은 절대 못 먹어요, 제가 좋아하는 커피 중 하나예요.”라고 말했었는데 그 말을 아직 기억하고 마지막 수업, 선물로 건네준 그녀. 그녀의 따스한 관심과 마음이 봉투에 담겨 손으로 그 온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만 즐겨 마셨다던 그녀, “커피 맛은 다 쓰고 고소한 거 아니에요?”라고 질문했던 그녀가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를 알게 된 것 같아서 함께 했던 수업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켠이 뿌듯해져 온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파나마는 커피가 생산된 나라의 이름, 에스메랄다는 커피를 재배한 농장 이름, 게이샤는 커피 품종을 의미한다. 게이샤 품종은 원래 에티오피아 게샤 지방에서 유래한 품종으로 1930년대에 아프리카에서 중미로 전파되었다. 파나마의 보케테 지역에 있는 에스메랄다 농장
성공의 비결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고, 누구나 그 일로 성공하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 모두가 쉽게 성공하지는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이미 성공한 사람을 부러워하고, 이런 생각이 든다. ‘나도 관심이 있는 일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실천해서 성공할 거야!’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에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미 성공한 선배들만큼 하려고 하는 방법을 그들에게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똑같은 말이 나온다. 자신이 모델로 하고 싶은 영상을 찾아, 그 내용을 바탕으로 자기 영상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이다. 책을 쓰려고 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먼저 자신이 쓰고 싶은 주제에 관한 책을 최소한 5 권, 평균 10권정도 읽고, 그 책들이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자신의 책에서도 써야 되고, 그 뒤에 자기만의 주장이나 스토리를 붙이면 된다는 것이다. 타인과 똑같은 일을 해도 의미가 없다고 우리는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는다. 지난 달에 일본에서 출간된 자기계발서 "고민하지 않는 사람의 사고방식" (기노시타 카츠히사・저)을 읽었다. 그 책의 번역본이 아직 출간되지 않지만 그에 따르면 성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하면 된다. 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