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기도의회 이은주 (교육행정위원회)입니다. 교육행정자로서 저는 매일 아침 경기도의 교육 현장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묻곤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어제보다 나은 환경에서 공부 하는가? 아이들이 마주할 미래는 오늘보다 따뜻한가? 그리고 그 미래를 위해 정치는 과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저는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배웠고,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으로서 예산과 조례라는 차가운 활자 속에 아이들의 뜨거운 꿈을 담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습니다. 지방행정학 박사과정를 마무리하고 있고 구리교육문화원장으로 활동하는 가운데 지역사회 교육 공동체의 밑바닥 민심을 읽어냈고, 때로는 부모의 마음으로, 때로는 행정가의 시선으로 우리 교육의 명암을 목격했습니다. 이제 저는 그동안의 의정 활동 기록과 현장에서 체험한 수많은 지혜의 조각들을 모아, 대한민국교육신문 독자 여러분과 함께 깊은 성찰과 대화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칼럼은 단순히 정책을 홍보하는 자리가 절대 아닙니다. 교육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세밀한 결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현장 기록지’이자, 대한민국 현재와 미래 교육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연구의 장이 될
요즘 일요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모인 전국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에는 설렘으로 충만하게 된다. 《왔다! 내 손주》의 방송 프로그램이 기다려지는 상황에서다. 이 방송은 해외에 사는 손주들이 한국의 조부모를 찾아오는 여정을 따라가며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공감과 학습의 순간을 포착하는 OBS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가족 예능을 넘어, 우리가 잊고 사는 가족과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 중요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프로그램의 기본 구조는 간단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다. 비행기를 타고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으로 온 손주들은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며 서로의 문화와 생활 방식에 부딪히고, 웃음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해 가는 잔잔한 과정을 심도 있게 보여 준다. 외국에서 자란 아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 아이들을 처음(또는 오랜만에) 보는 조부모의 반응은 때로는 낯설고 서툴지만, 그 과정 자체가 교육적 상호작용으로 더없이 귀중한 경험이 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단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넘어, 격대교육(intergenerational learning)이 자연스러운 현장을 목격한다. 학술 연구는 다세대 학습이
어느 주말, 수면을 다시 생각하다 어느 바쁜 주말이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 몰려온 피로에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즈음,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CRM 상담사의 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오늘 헌혈하신 000헌혈자님이 지금 어지러워 버스 정류장에 계신다고 합니다. 연결해드릴까요?” “네 ” 짧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헌혈자의 목소리가 들렸고, 저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어디 계세요?” “버스 정류장이요.” “지금 어디가 가장 불편하세요?” “속이 좀 안 좋고, 어지러워요” “의자에 앉아 계시고, 가능하다면 누워서 다리 들고 계세요. 제가 지금 바로 갈께요.” 목소리만으로도 어느 정도 상태인지 느껴졌습니다. 이동 혈압계를 챙겨 들고, 급히 정류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습니다. 헌혈 후 대부분은 특별한 증상 없이 귀가하지만 간혹 오늘처럼 헌혈 관련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 비교적 흔한 증상이 혈관미주신경반응인데요. 과도한 긴장이나 불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 나타나게 되죠. 특히 처음이거나 피로가 누적된 상태일 때 헌혈하는 경우 그럴 수 있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의 유일한 추종자 산초 판사는 어느 섬의 태수가 되었다. 진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산초는 다음과 같은 엄격한 법령을 발표 했다. “이 섬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여기 왜 왔느냐?'라고 묻는다. 진실을 말하면 통과시킨다. 거짓을 말하면 처형한다.” 어느 날, 한 남자가 국경을 넘어왔다. 병사가 이유를 묻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저는 처형당하러 왔습니다.” 병사는 당황했다. 이 남자를 통과시키면 그는 거짓말을 한 셈이므로 처형해야 한다. 하지만 처형을 한다면 그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그는 진실을 말한 셈이므로 처형할 수 없다. 병사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산초에게 달려가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산초는 곧바로 대답했다. “그를 통과시키게.” “네?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선을 베푸는 것이 악을 베푸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네. 이는 내가 머리를 쥐어짜서 내린 결론이 아니야. 내가 이 섬의 태수로 오기 전날 밤, 돈키호테가 수차례 가르쳐 준 마음가짐이 생각났기 때문이지. 그것은 어떤 경우에든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자비를 취하라는 것이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
“전 국민에게 AI 교육을 실시해 한글처럼 자유롭게 쓰게 하겠다.” 이 말은 최근 경제부총리가 방송의 인터뷰에서 밝힌 정부의 대국민 약속이자 의지다. 이 발언은 기술 정책을 넘어 국가의 미래상을 제시한 선언에 가깝다. 한글이 문자 해독 능력을 넘어 국민의 사고와 문화, 경제를 바꿨듯이, 인공지능 역시 일부 전문가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선언을 단지 구호가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교육은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첫째, AI 교육은 ‘코딩 중심’에서 ‘활용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시민에게 필요한 것은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능력이 아니라, AI를 이해하고 질문하며 판단하는 능력이다. 2019년 OECD는 『Education 2030』에서 미래 핵심 역량으로 문제 해결력, 비판적 사고, 기술 활용 능력을 함께 제시한 바가 있다. 이는 초·중등 교육에서 AI를 독립 과목으로 가르치기보다, 국어·수학·사회·과학 속에서 사고의 도구로 사용하게 하는 방식이 효과적임을 시사한다. 한글을 ‘과목’이 아니라 ‘생활 언어’로 익히듯, AI 역시 전 교과에서 쓰게 해야 한다. 둘째, 성인과 노년층
2001년 개봉한 영화 제목이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했고 1700년대 실존 인물이었던 ‘알렉산더 셀커크’(1676-1721)를 모델로 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선원이었고 표류하다가 무인도에서 4년을 지내었고 다니엘 디포의 소설『로빈슨 크루소』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아무튼 ‘버려지다’ ‘내 팽개쳐지다’를 뜻하는 영화 ‘캐스트 어웨이’는 미국 국제 화물 운송 서비스 업체 페덱스(FedEx)의 직원인 척 놀랜드(톰 행크스)가 해외 출장 중에 비행기 추락 사고로 태평양의 무인도에 홀로 팽개쳐지면서 전개된다. 영화의 대부분은 절해고도에서의 처절한 생존 투쟁을 그리고 있디. 물고기 한 마리 잡기도 힘들었던 그는 너무나 힘겨워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반드시 살아야만 할 이유가 있었다. 머리맡에 놓인 사진의 주인공 바로 아내 ‘캘리’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던 그는 잔해 중에서 건진 배구공에 사람의 얼굴을 그려 넣고 대화하면서 치통이 생긴 이를 스케이트 날로 빼면서 4년 동안이나 견뎌낸다. 그리고 거센 파도 때문에 거의 탈출이 불가능했지만 영화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처럼 그는 마침내 땟목을 엮어서 무인도를 벗어난다. 그리고 극적으로 구조가 되고
요즘 인공지능(AI)이 온 세상의 흐름을 압도하고 있다. 저 멀리 미국의 휘황찬란한 도시 라스베가스에서는 1월 6일~9일까지 미국 소비자 가전협회에서 주관하는 ‘CES 2026’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다. 인간의 사고와 판단 영역까지 넘보는 AI 시대, 올해는 피지컬 AI인 휴머노이드 로봇과 자율주행 로봇의 진화된 모습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그 속에서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우리 기업들의 AI 시대를 선도하는 모습에 진한 감동과 함께 힘찬 박수와 응원을 보낸다. 이런 날로 진화하는 혁명과 같은 AI 시대, 교육은 더 이상 지식의 축적만을 목표로 할 수 없다. 이제 학교는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떻게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이 질문에 깊이 있고 입체적인 답을 제공하는 세 권의 책이 있다. 미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 교수의 『사피엔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그리고 다중우주론 분야의 최고 권위를 지닌 MIT 물리학자이자 인공지능 시대를 대비하는 ‘생명의 미래 연구소(FLI)’의 공동설립자인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이다. 이 세 권은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하나의 사유 체계를 이루며, AI 시대 필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양극화가 심화된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더 이상 ‘기회의 사다리’가 아니다. 비용이 선결 조건이 되는 경쟁 시장에 이미 깊숙이 진입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일컬어 ‘사교육 공화국’이라 지칭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입시 제도는 공정하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구조다. 이 현실 앞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지금의 입시는 과연 능력을 평가하는가, 아니면 가정의 경제적 능력을 측정하는가. 한국에서 사교육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오래된 논쟁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사교육 그 자체가 아니다. 사교육이 없어서는 안 되는 구조가 문제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상위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집단적 인식, 입시 정보와 전략이 학원 시장에 종속된 현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묵인해 온 제도적 무책임이 오늘의 사교육 공화국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는 끊임없이 ‘공정성’을 말하면서도, 정작 출발선의 불평등을 방치해 왔다. 고가의 컨설팅, 선행 학습, 비교과 스펙 관리에 접근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벌어져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우리는 늘 목표 앞에서 지치는가 어느새 새해가 지난 지 10일이나 되었어요. 위클리 다이어리를 쓰는 저에게는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따라옵니다. ‘어휴, 벌써 한 주가 지난거야? 시간이 왜 이리 빠른 거야.’ 나지막이 읊조리는 혼잣말에 지나가던 막내가 피식 웃음을 건넵니다. “엄마, 이제 겨우 한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는 거야” 딸의 말이 오늘따라 더욱 친숙하게 들리며 작은 철학자의 가르침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 마음에 흡수되는 온도는 이렇게나 다른가봅니다. 늘 이맘때면 연중행사와 같던 저의 독백, ‘시간은 늘 부족한데, 할 일은 늘어나는 이유는 뭐지? 몸은 예전과 같지 않은데 말이야’ 어느 심리학자가 한 말이 불현 듯 기억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몸은 약해질 수 있지만, 지혜는 강해지기에 너무 슬퍼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이죠. 차 한 잔을 준비하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지혜보다 어쩌면 몸으로 밀어붙인 일들이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을 위한 독서와 몇몇 모임을 하면서 삶에는 늘 진심이라 믿었지만, 결과를 보면 불만족한
어느 비가 오는 날 고속버스를 탔다. 창밖에 내리는 비 때문에 창에 김이 서려서 밖이 보이질 않아 커튼으로 닦아 보았으나 닦이질 않았다. 재질이 나일론 섬유라 그런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손수건으로 닦으니 잠시 후 다시 흐려지기는 했으나 우선은 깨끗이 닦였다. 문득 장마철이 생각났다. 장마가 계속되어 햇빛을 보기 어려운 때는 온 집 안이 습하여 모든 빨래들이 잘 마르지 않기는 하지만 가장 곤란한 것은 수건이다. 손수건 정도야 선풍기 바람에도 금방 말라 버리지만 수건은 오래오래 탈수를 하여도 잘 마르지 않아 불쾌한 냄새가 난다. 수건이 유독 마르지를 않는 이유는 그것이 많은 물기를 보듬어 안기 때문이다. 손수건으로는 눈물이나 땀 몇 방울 정도를 닦을 수 있을 뿐이지만 수건은 목욕 후의 물기도 닦을 수 있고 감은 머리를 말릴 수도 있다. 언젠가는 네 잎 클로버를 따서 아무 생각 없이 책갈피 대신 바인더에 끼워 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 클로버 생각이 나서 꺼내보니 그것은 문드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돼버렸다. 비닐이 클로버의 습기를 흡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그렇다. 살면서 고난 없는 사람이 없고 어려움 없는 사람이 없다. 이 때 누군가 넌지시 다가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