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의심했다. 재우쳐 물었다. “정말, 우리나라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고?” “그렇다니까!” 이 대답이 돌아왔을 때의 감격이란, 하! 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감격의 전율은 계속되고, ‘노벨 문학상’이라는 글씨만 봐도 어깨가 펴진다. 사실, 진즉에 됐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동안 노벨 문학상에서 번번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기에 노벨 문학상이 우리에게 돌아왔다는 팩트(fact)에 충만히 기쁘고 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계절도 ‘가을’인데, ‘문학상’ 소식까지, 이런 금상첨화가 만들어지니 올가을은 더더욱, 책 읽기에 우리를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다. 여기저기에서 ‘노벨 문학상’, ‘노벨문학상’이라는 표기가 쏟아져 나와서 이 표기를 매일매일 대하게 되니, 음... 띄어쓰기가 다르네? 하는 생각에도 이르게 되는 모양이다. ‘노벨 문학상, 노벨문학상’ 중에서 띄어쓰기로는 뭐가 맞느냐는 질문을 해 온다. 답부터 말하자면, 둘 다 맞는다. 띄어쓰기에는 원칙과 허용이 있다. 원칙은 ‘각 단어를 띄어 적음’이고, 허용은 ‘붙여 적을 수 있음’이다. 허용 띄어쓰기 범위는 한정되어 있는데, 허용 띄어쓰기가 활발히 적용되는 데가 ‘고유 명사’와
술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술값은 아무래도 싼 쪽이 마음 놓고 마실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한국인의 소울인 소주는 마트에서 산다면 2천 원 내외로 구입 가능하다. (물론 식당에서 마신다면 좀 더 비쌀 것이다) 이런 소주와 대비되는 것이 바로 와인의 가격이다. 와인도 저렴한 것은 1만 원 이하에서 충분히 구입 가능하나, 괜찮은 품질의 와인을 먹으려면 2~3만 원은 지불해야 하며, 특히나 비싼 건 수억 원을 호가할 수도 있다. 겨우 750ml의 알코올이 이렇게나 비싼 일일까? 싶기도 하다. 2018년 10월 13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1945년산 프랑스 최고급 와인 한 병이 6억 원이 넘는 역대 최고가에 낙찰된 것이다. 그 전설의 와인은 바로 '최고급 와인'의 대명사 '로마네 꽁띠(Romanée-Conti)' 1945년 빈티지가 55만 8천 달러(약 6억 3천만 원)에 낙찰된 것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엄청난 가격의 대명사, 누구나 마시고 싶어 하지만 마실 수 없는 전설의 와인, 로마네 꽁띠를 소개하고자 한다. 로마네 꽁띠는 프랑스 부르고뉴의 본 로마네 마을의 특급 밭(Grand Cru)인 로마네 꽁띠에서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지금처럼 말은 했어도 그 말을 그대로 쓸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말’을 ‘글’로 적을 수 있다는 건,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일은 바로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우리말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렵다고 하고 외국 사람들은 쉽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는 문법 대상으로서 우리말을 대하는 일이 많고, 외국 사람들은 우리가 외국어를 공부할 때처럼 해당 언어를 그 나라의 자음과 모음으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즉 ‘소리’를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에 일단 집중하기 때문이리라. 우리말이 쉽다는 건 소리를 그대로 자음, 모음이라는 기호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을 ‘표음 문자(表音文字)’라고 하는데, 이는 소리가 있으므로 글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며, 소리와 표기의 상호작용이 활발함을 의미한다. 그럼, ‘돐’로 쓰이던 말이 ‘돌’이 된 이유는... 바로 ㅅ을 발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예전에는 겹받침의 ㄹ과 ㅅ을 모두 발음했지만, ㅅ을 발음하지 않게 되니 그 발음을 표기할 이유는 사라졌고 그래서 표기는 ‘돐’에서 ‘돌’이 된 것이다. ‘돐’이 ‘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번아웃이라는 말은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여름에 너무 더웠기에 계속 집에서 책 원고, 블로그와 시 등 글만 쓰고 있다가 9월이 되어 일주일 동안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대구에서 열린 수필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힘이 없어졌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길을 걸어갈 마음이 있는지 등 자신의 방향성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평소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전쟁과 기아 같은 생명에 위험을 주는 일이 없는 한, 하루를 만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더 행복해진다. -그런 내가 왜? 며칠 동안 예전처럼 살려고 했지만 못했고, 결국 생산적인 활동을 다 포기해 4~5일 완전한 휴식기간을 보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번아웃 상태가 될 때는 쉬고 싶다고 몸과 마음이 내놓고 있는 신호이다. 그럴 때 정답은 단 하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며칠 동안 평상시처럼 생활하려고 발버둥을 친 이유는 바로 초조감이며, 이 상황이 언제
보통의 하루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피대신 보리차를 마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로 다가가 1+1 행사 중인 보리차를 꺼내 들고는 계산대에 있는 점원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2000원입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딸랑” 소리와 함께 나는 편의점을 나선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처음 하는 일중 하나는 편의점에 들러 습관처럼 보리차를 마시는 일이다. 간혹, 달달한 무언가가 끌릴 때면 포장된 바나나를 사서 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보통의 하루가 시작된다. 편의점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너무나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의 한 장면이다. 며칠 전,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 한 마리가 길거리에 늘어진 모습을 보았다. ‘좋은 곳으로 가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잠시지만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잔잔한 아침에 찾아온 불편한 장면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는데, 보통의 하루에 상처가 생긴 기분이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5에‘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키워드가 있다. 과거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였다면, 아보하는
단순함이 필요할 때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어느 작가님이 보내주신 문자를 몇 번이고 음미하며 읽는다. 그 이유는 “단순”, “쓸데없는 일”이라는 글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며칠 전 일이 문득 생각나서다. 그날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며 끈질기게 머물러있던 여름이 거센 비와 함께 물러가고, 가을이 재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산을 찾은 날이기도 하다. 아직 단풍이 물들 때는 아닌지 초록 나뭇잎들이 햇살을 잘게 부수며 빛나고,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에 가을이 배어있다. 산속으로 접어들자 툭툭 소리를 내며 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진다. 밤송이는 이맘때 산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산길을 걷던 우리 일행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밤과 알이 그대로 들어있는 밤송이를 발견하고 환호한다. 처음은 산행 중에 만나는 소소한 재미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떨어진 밤송이는 많아지고 크기도 제법 굵었다. 사람 마음이란 그런 것인지 양과 질이 좋
가을을 채우는 높이 ‘오늘은 어떤 커피를 마실까?’ 출근길, 잠시 고민해 본다. 커피 생각을 하며 버스 안에서 바라본 초록색 가로수의 잎에 아직도 여름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틀렸음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스치며 흐르는 시원한 공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눈에 담기고, 피부로 느껴지는 자연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출근길 고민은 코스타리카 아끼아레스 지역 1,200m에서 재배된 커피를 마시며 끝이 난다. 체리와 같은 산미, 캐러멜의 단맛이 입안으로 퍼지는 사이, 내일의 휴일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반복되는 수업과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개천절, 모처럼의 휴일에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파란 하늘에 찰나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챙겨 신고 청계산의 가을 속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산에 도착하고 나에게 가장 먼저 한 말. “힘들다고 중간에 내려오지 말고 정상까지 꼭 올라가자!”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다부진 결심을 하니 산에 오르는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진다. 의욕만큼이나 빨라진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발바닥에 닿는 땅의
올해도 어느덧 시월까지 오게 되었다. 한 해가 ‘시작!’ 하면 무섭게 달려가니 ‘벌써?’라는 말을 자꾸 하게 된다. 이제 새달인 시월을 맞이하면서 달력을 훑어본다. 시월은 이른바 ‘빨간날’이 이틀이나 된다. 게다가 올해는 국군의 날이 임시 공휴일이 되면서 사흘이나 빨간날이다. 1일 국군의 날, 3일 개천절, 9일 한글날... 참 의미심장한 날들이다. 모두 ‘우리나라’의 ‘존(存)’, ‘립(立)’과 관련이 깊다고 여겨지니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라는 말을 하니, ‘우리나라, 저희 나라’ 같은 표현 문제가 떠오른다. 이들 표현을 놓고 설왕설래했던 적도 있고 해서 이 자리에서 짚고 넘어가 보려고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 사람들인 우리는 ‘우리나라’라고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우리’와 ‘나라’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합성어(한 단어)이다. 대명사 ‘우리’의 뜻이 그대로 나타나는 ‘우리 학교, 우리 엄마’ 같은 경우가 아니고, 대명사 ‘우리’와 명사 ‘나라’ 각각의 뜻을 넘어서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이르는 말”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 합성어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은/한국은 사계절이 있어요.’가 아니라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양보는 패배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나 동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은 ‘저 사람이 OOO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 ‘히토노 후리 미테 와가 후리 나오세(人の振り見て我が振り直せ)'라는 속담이 있다. 남(히토)의 행동(후리)를 보고 내 행동(와가 후리)을 고쳐라(나오세), 즉,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반성해야 하는 부분은 고쳐라,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시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이다. 타인을 변화시키기보다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위험하지 않다고 명저 《인간관계론》안에서 데일 카네기도 말한다. 자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해 자신을 개선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우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도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
빗속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용기 “지금은 나갈 수 없을 것 같은데..” “비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있어.” “택시를 부를까?” 건물을 나서려는데, 학생들이 입구에서 서성인다. 교육 중이라 몰랐는데, 점심까지는 괜찮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로 학생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비바람이 잦아들기만을 바랬다. 나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갔다가는 어떤 상태가 될지 눈앞에 그려졌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그래도 내가 먼저 나서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한발 나섰지만, 장대비에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3단 우산을 핑계 대며 다시금 뒤로 물러섰다. “두두두두두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여전했고, 시간은 10여 분이 흘렀다. 몇몇 학생들이 더 이상 늦으면 안 되는 약속이 있는지, 바지를 걷어붙이고 빗길로 걸어갔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학생은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감싸고 맨몸으로 빗속에 몸을 던졌다. 빗속의 모습들이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학생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빗줄기가 잦아들자, 나 역시 용기 내어 우산을 펼쳤다. 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