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주하게 될 이별의 시간 하얀 국화꽃이 가득한 길을 걷는다. 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검은색으로 위아래를 단장하고 죽음이라는 문턱을 넘어선 고인 앞에 고개를 숙인다. 남겨진 사람. 눈물로 퉁퉁 불어버린 얼굴을 마주하고는 끝맺음을 할 수 없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 자리를 돌아선다. 7월. 주변 사람들의 슬픔을 마주한 시간이 벌써 3번째이다. 죽음이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오랜 병환으로 생명의 시간을 예상을 했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이별이라도. 죽음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언제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순간인 듯하다. 장마로 비가 계속해서 내린 계절이지만, 비가 거치고 유달리 햇볕이 강렬했던 어느 날. 가까운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다. 화장터로 향하는 죽음들이 어쩜 그리도 많은지. 한 시간 남짓 지나, 한 줌이 되어 나오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본다. 한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살아생전에는 헤아릴 수 없는 시간들을 자신의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자기 삶을 위해 힘썼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음 뒤에는 모두가 똑같이 한 줌이 되어 나오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모르게 허무함과 아쉬움이 차오른
다시 일어서는 시간 난 꿈을 잘 꾸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한 번씩 얼토당토않은 꿈을 꾸다 깨어선 황당해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오늘 새벽의 꿈은 너무 생생했고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잠을 깨고 나서도 한참을 복잡한 마음으로 누워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하염없이 울음을 토해냈다. 주변엔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가 있었고, 공부를 함께하는 동료들이 수십 명이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의 질문과 답변 시간이 이어졌고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잠긴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지금 글을 쓸 수가 없어요.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고 흐느끼듯이. 그리고 주저리주저리 하소연하듯 뱉어내는 말은 눈물과 울음이 삼켜버린다. 그때 함께 있던 선생님과 동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꿈속이었지만 나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잠에서 깨어났다. 현실에서의 고민이 그대로 꿈속으로 옮겨졌고, 그 안에서 함께 울어주던 그들에게서 묘한 안도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말 대신에 눈물과 침묵으로 있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내 곁을
고요한 마음이 필요할 때 마시는 커피 강의로 많은 말을 하고, 다수의 수강생을 만나면 잠시 고요하게 나 자신에게 머물고 싶을 때가 있다. 강사인 나에게 사치처럼 느껴지는 고요함이 간절할 때, 점심 휴게 시간을 이용해 그 사치를 누리는 곳이 있다. 회사 근처 다양한 스페셜티 원두가 있는 핸드드립 카페. 비 오는 날 잠시 회사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들어갔던 카페가 지금은 종종 나만의 사치가 필요할 때 찾아가는 곳이 되었다. 그 카페의 문을 열고, 새로 들어온 원두가 있는지 메뉴보드를 확인하고 마셔보지 못한 원두가 있는지 살핀다. 유독 고요함이 필요한 오늘은 예멘 모카 마타리가 눈에 들어온다. 산미가 강하지 않고 묵직한 바디감에 초콜렛틱한 향이 특징인 예멘 모카 마타리. 예멘 모카 마타리는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빈센트 반 고흐가 즐겨 마신 커피로 알려져 있다. 커피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 커피는 부드러운 신맛과 다크 초콜렛향, 묵직한 바디감, 적당히 씁쓸한 맛의 기품이 느껴지는 레드와인의 풍미까지 담고 있는 커피이다. 예멘은 아라비카 커피가 세계 최초로 경작이 된 나라이다. 아리비카 커피를 수입하고자 했던 유럽인들에게 예멘의 모카 항을 통해 예멘의
교육에서의 자기주도성: 미래를 여는 열쇠Self-Directed Learning in Education: The Key to Unlocking the Future 자기주도성은 개인이 자신의 학습 과정을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으로, 현대 교육에서 매우 중요한 역량으로 자리잡고 있다. 교육은 이러한 자기주도성을 기르는 토대가 되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한 자원을 찾아 활용하며,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자기주도성은 단순히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습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지속적인 과정이며, 교육을 통해 자기주도성을 함양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임과 동시에, 이는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더욱 혁신적이고 자율적으로 만드는 길이다. 또한, 자기주도성의 발전은 협업과 소통을 통해 더욱 강화되기에.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동기를 제공하며, 이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따라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자기주도성을 키우고 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교육신문]
창의성은 교육의 가장 강력한 자원이다Creativity is the most powerful resource you can cultivate through education. 창의성은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능력으로,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역량이다. 교육은 이러한 창의성을 기르는 토대가 되며, 우리는 이를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혁신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창의성은 단순한 아이디어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교육을 통해 창의성을 함양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며, 이는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사회를 더욱 포용적이고 혁신적으로 만드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창의성의 발전은 또한 협업과 소통을 통해 더욱 강화되며,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창의성을 키우고 이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한민국교육신문]
교육은 미래를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Education is the most powerful weapon which you can use to change the world. 교육을 통해 우리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비판적 사고를 기르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또한,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그러므로, 오늘부터라도 자신의 배움에 투자하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교육은 단순한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후대를 변화시키고 성장하게 하는 과정이다. 미래를 위해 교육에 대한 우리 자신의 투자와 헌신을 결심하자. [대한민국교육신문]
커피 한 잔의 가치는 그것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에서 비롯된다 – 데이비드 린치 -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오고가는 말의 온도에서 나와 결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커피도 그러하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으면 나와 결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산미가 있어 나와는 결이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커피, 쓴맛이 강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커피. 오늘은 커피의 결을, 나에게 맞추는 레시피를 배우는 브루잉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내리쬐는 햇볕과 열기로 가득 찬 길을 가로질러 양손에 원두 박스를 들고 학원 본관 건물에서 별관으로 이동한다. 브루잉 수업에 필요한 기물들을 준비해 놓고, 에어컨의 온도를 확인하고 수강생들을 기다리며 오늘 브루잉 수업엔 어떤 원두를 사용할까 살펴본다. 박스 안에 로스팅 일자, 생산지역, 가공방식, 배전도가 적혀있는 원두 봉투들을 보니 ‘오늘은 인도네시아로 커피 여행을 떠나 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수업 시간이 되고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눈 후 물줄기 연습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조용한 강의실은 드리퍼 안에 닿는 물 소리, 서버를 통해 흐르는 물소리로 작은 개울들이 생긴 듯하다. 10분쯤 지나니 “선생님, 힘들어
몇 년 동안 책을 헤어진 연인처럼 잊고 산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아련한 추억에 몸살을 하다가 선뜻 다시 만날 마음은 쉽게 낼 수 없는 그런 관계처럼. 한때 책이라면 밤을 새워 읽고, 월급날 서점 가는 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이 내가 맞나 할 정도의 변심이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고, 읽지 않는 것도 습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는 게 힘들고 바빠 시간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일 뿐인데, 너무 오랫동안 내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이유로 잘 써먹었다. 그냥 읽지 않는 게 편했을 뿐이다. 한 번 몸에 익은 편안함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게으른 자의 핑계 “내일부터는 꼭”으로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다. “책 읽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읽을 수밖에 없는 무슨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문화센터에서 보드게임을 배우는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선생님, 저 독서 모임 만들건대 같이 할래요?” “어머, 좋아요. 함께 해요.”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데 올 수 있을까요?” “그럼요. 가야죠.” 그렇게 나는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놓
“삶이 크게 의미가 있지가 않아요. 이대로 죽어도 그냥 뭐. 괜찮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중년의 한 남성을 마주하고 있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내는 암 선고를 받고 누워 있다고 했다. “앞으로 즐기면서 살기로 했는데. 날벼락 같은 일이었어요.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아내를 보자니 인생이 허무하게만 느껴지는군요.”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잠시 들른 병실 로비에서 눈빛에 초점을 잃은 채 이야기를 하는 이름 모를 어르신에게 그렇다 할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집으로 오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의 병환 앞에 허무함을 읊어대는 남성을 보고 있자니, 저 마음은 어떠할까 생각하게 된다. 함께 하자 약속했던 것들을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삶의 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더 낫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어쩌면 반어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삶의 무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쇼펜하우어도 이런 말을 했다. “죽도록 잘 살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그리고 “누구나 내일이 오지 않길. 한 번 이상은
언제부터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볼 수 없게 된 걸까. 가끔씩 공중전화 박스를 보기도 하지만 안에 전화기는 없다. 어린 시절, 공중전화는 급한 일이 있을 때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집 전화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용하는 편리한 도구였다. 이제는 그런 제한이 없다. 각자가 휴대전화를 가져 다니고 있다. 와이파이만 있으면 앱을 이용해 저렴한 가격에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대로 대화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자유의 대가로 무엇을 잃었을까? 사람들은 원할 때 전화를 걸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인내심을 잃은 것 같다. 우리는 더욱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받았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빼앗겼다. 조선 중기의 시인, 기녀, 작가, 서예가, 음악가, 무희였던 황진이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남성의 방문을 기다리며 나뭇잎이 흩어지는 소리조차 그 사람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읊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이기에 사랑은 더욱 불타오르고, 답답한 마음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동시에 기다리는 마음은 인내심을 키웠고, 또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