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에게 쉽지 않은 첫걸음 “드르릉” 차의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는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천천히 떼며, 주차장을 몇 바퀴 돌다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좀처럼 늘지 않는 운전실력은 내가 겁이 많아서인지,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차 산지가 언제인데. 아직 혼자서 운전이 힘들면 어떡해?”하며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많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의 운전실력은 1년이 넘도록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작 시동을 거는 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이니 말이다. 아직도 운전석에 앉는 것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도 괜찮게 운전을 하는 날이 올까.’하는 생각과 함께 주차장을 나오다 불현듯, 빈센트 반 고흐의 첫걸음(first step)이 떠올랐다. 아기의 첫 발짝을 떼는 순간의 광경을 그린 것으로, 평소 고흐가 보여주었던 화풍과는 사뭇 다르게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진 그림이다. 고흐의 첫걸음은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밭을 갈던 아버지는 이제 막 첫걸음을 떼는 자식을 보며,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를 향해 팔을 뻗는다. 아이의 어머니는 혹여나 넘어질까 뒤에서 아이를 잡아주며, 발걸음이 나아갈 수 있도록 부축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당신의 몸은 당신과 화해하고 싶어한다 당신의 몸은 당신과 화해하고 싶어한다 “미안해. 내가 너무 몰랐어. 네가 하는 말을 무시하고 있었구나. 무심해서 미안해.” 누구에게 큰 잘못을 한 것일까?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그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사과를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이 장면. 사실은 내가 내 몸에 하는 고해성사다. 살면서 처음이다. 왜 몰랐을까? 마음을 알아차리고 돌보는 것만큼 몸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두통을 자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어느 날 깨달았다. 두통을 못 느끼고 살았다는 말보다 그 통증을 무시하고 살았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무던히 참고 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하고 필요한 검사를 진행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결과를 듣게 될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마지막에 의사에게 우린 이런 말을 듣게 되지 않을까?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너무 많이 들어 충분히 예상 가능할 정도다. 언제부터인가 현대인의 모든 문제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스트레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번아웃이라는 말은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여름에 너무 더웠기에 계속 집에서 책 원고, 블로그와 시 등 글만 쓰고 있다가 9월이 되어 일주일 동안 한국에 잠시 다녀왔다. 대구에서 열린 수필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집에 돌아와서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힘이 없어졌다. 심지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길을 걸어갈 마음이 있는지 등 자신의 방향성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 나는 평소 아주 행복한 사람이다. 전쟁과 기아 같은 생명에 위험을 주는 일이 없는 한, 하루를 만족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게다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더 행복해진다. -그런 내가 왜? 며칠 동안 예전처럼 살려고 했지만 못했고, 결국 생산적인 활동을 다 포기해 4~5일 완전한 휴식기간을 보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번아웃 상태가 될 때는 쉬고 싶다고 몸과 마음이 내놓고 있는 신호이다. 그럴 때 정답은 단 하나,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며칠 동안 평상시처럼 생활하려고 발버둥을 친 이유는 바로 초조감이며, 이 상황이 언제
보통의 하루 “딸랑.”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간다. 커피대신 보리차를 마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쇼케이스로 다가가 1+1 행사 중인 보리차를 꺼내 들고는 계산대에 있는 점원과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2000원입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딸랑” 소리와 함께 나는 편의점을 나선다. 하루 일과 중 가장 처음 하는 일중 하나는 편의점에 들러 습관처럼 보리차를 마시는 일이다. 간혹, 달달한 무언가가 끌릴 때면 포장된 바나나를 사서 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의 보통의 하루가 시작된다. 편의점 점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까지, 너무나 익숙해서 습관이 되어버린 일상의 한 장면이다. 며칠 전, 편의점으로 향하는 길. 교통사고를 당한 비둘기 한 마리가 길거리에 늘어진 모습을 보았다. ‘좋은 곳으로 가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잠시지만 기도를 했던 것 같다. 잔잔한 아침에 찾아온 불편한 장면이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는데, 보통의 하루에 상처가 생긴 기분이었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5에‘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키워드가 있다. 과거에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였다면, 아보하는
단순함이 필요할 때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어느 작가님이 보내주신 문자를 몇 번이고 음미하며 읽는다. 그 이유는 “단순”, “쓸데없는 일”이라는 글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며칠 전 일이 문득 생각나서다. 그날은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며 끈질기게 머물러있던 여름이 거센 비와 함께 물러가고, 가을이 재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산을 찾은 날이기도 하다. 아직 단풍이 물들 때는 아닌지 초록 나뭇잎들이 햇살을 잘게 부수며 빛나고, 스치는 바람의 서늘함에 가을이 배어있다. 산속으로 접어들자 툭툭 소리를 내며 나무에서 밤송이가 떨어진다. 밤송이는 이맘때 산을 찾는 이들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산길을 걷던 우리 일행은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밤과 알이 그대로 들어있는 밤송이를 발견하고 환호한다. 처음은 산행 중에 만나는 소소한 재미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떨어진 밤송이는 많아지고 크기도 제법 굵었다. 사람 마음이란 그런 것인지 양과 질이 좋
가을을 채우는 높이 ‘오늘은 어떤 커피를 마실까?’ 출근길, 잠시 고민해 본다. 커피 생각을 하며 버스 안에서 바라본 초록색 가로수의 잎에 아직도 여름인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틀렸음을 느끼게 된다. 얼굴을 스치며 흐르는 시원한 공기,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눈에 담기고, 피부로 느껴지는 자연은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출근길 고민은 코스타리카 아끼아레스 지역 1,200m에서 재배된 커피를 마시며 끝이 난다. 체리와 같은 산미, 캐러멜의 단맛이 입안으로 퍼지는 사이, 내일의 휴일을 기다리는 마음과 함께 반복되는 수업과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개천절, 모처럼의 휴일에 이불속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생각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파란 하늘에 찰나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챙겨 신고 청계산의 가을 속으로 떠날 채비를 한다. 산에 도착하고 나에게 가장 먼저 한 말. “힘들다고 중간에 내려오지 말고 정상까지 꼭 올라가자!”라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다부진 결심을 하니 산에 오르는 발걸음이 서서히 빨라진다. 의욕만큼이나 빨라진 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발바닥에 닿는 땅의
양보는 패배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가족이나 동료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많은 사람은 ‘저 사람이 OOO했었으면 좋겠는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에서 ‘히토노 후리 미테 와가 후리 나오세(人の振り見て我が振り直せ)'라는 속담이 있다. 남(히토)의 행동(후리)를 보고 내 행동(와가 후리)을 고쳐라(나오세), 즉, 타인의 행동을 보면서 반성해야 하는 부분은 고쳐라, 타인을 비판하기 전에 자시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이다. 타인을 변화시키기보다 자기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훨씬 유익하고 위험하지 않다고 명저 《인간관계론》안에서 데일 카네기도 말한다. 자신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숙고해 자신을 개선하는 용기를 가지는 것은 우리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Karl Paul Reinhold Niebuhr)도 평온을 비는 기도(Serenity Prayer)에서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
빗속에서 춤을 출 수 있는 용기 “지금은 나갈 수 없을 것 같은데..” “비바람이 너무 세게 불고 있어.” “택시를 부를까?” 건물을 나서려는데, 학생들이 입구에서 서성인다. 교육 중이라 몰랐는데, 점심까지는 괜찮았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로 학생들은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비바람이 잦아들기만을 바랬다. 나라고 다를 바가 있을까. 지금 저 문을 열고 나갔다가는 어떤 상태가 될지 눈앞에 그려졌다.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그래도 내가 먼저 나서야 하나..’하는 생각으로 한발 나섰지만, 장대비에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3단 우산을 핑계 대며 다시금 뒤로 물러섰다. “두두두두두두..............”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여전했고, 시간은 10여 분이 흘렀다. 몇몇 학생들이 더 이상 늦으면 안 되는 약속이 있는지, 바지를 걷어붙이고 빗길로 걸어갔다. 우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학생은 뒤로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감싸고 맨몸으로 빗속에 몸을 던졌다. 빗속의 모습들이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 학생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았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빗줄기가 잦아들자, 나 역시 용기 내어 우산을 펼쳤다. 차가
말이 가지는 힘 얼마 전, 지인에게 선물 받은 장미 몇 송이를 유리병에 꽂아 식탁 위에 올려둔 날. 늦은 저녁, 학원을 다녀온 아이가 발견하고는 환한 얼굴로 말한다. "엄마, 꽃도 잠을 잔대. 신기하지?" "와 정말? 잠도 잔대? 엄마는 사랑해, 미워해 말하면 알아듣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러자 아이가 장미 가까이 다가가, "사랑해. 사랑해"라고 속삭이더니 나를 보며 웃는다. "식물 역시 사람처럼 높은 의식은 아니지만, 의식이 있대. 그래서 자기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더라. 사랑과 관심을 받은 식물이 잘 자라는 것은 당연하겠지. 그러니까 식물에도 사람에게도 좋은 말을 많이 해주자.”라고 말을 하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식물은 적대적인 생각 같은 구체적인 위험에도 반응하지만 좋은 감정에도 무심하지 않다. <중략> 날이 갈수록 욕설을 들은 식물은 눈에 띄게 시들어갔고, 반면에 칭찬을 들은 식물은 크기와 건강미가 열 배로 돋보였다. - 식물의 은밀한 감정, 디디에르 반 코웰레르 어디 식물뿐이겠는가? 사람은 식물보다 훨씬 섬세하고 민감한 감정까지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을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거의 본능적으로 나
매일 닦아내는 것들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말로 가득했던 강의실은 얼음이 떨어지는 제빙기 소리만 들리는 적막한 강의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듯, 수강생들이 사용한 저울을 테이블 아래에 내려놓으며 마감 청소를 시작한다. 에스프레소 머신 청소는 잘 되어있는지, 사용했던 기물은 제자리에 잘 놓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며 발걸음을 옮긴다. 에스프레소머신 위에 접혀 있는 린넨 한 장이 눈에 들어온다. 옮기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린넨을 집어 든다. 멈추어진 발걸음과 함께 마감 청소를 잠시 멈추고, 누가 놓고 간 것인지 수업시간 수강생들이 앉았던 자리를 떠올린다. 바리스타 수업을 들으면 가장 먼저 준비하게 되는 린넨과 행주. 수업시간, 가방에서 린넨과 행주를 꺼내는 수강생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대부분 처음엔 비닐봉지에 넣어 가방 안에 조심스레 가져오지만, 수업 회차가 진행되면 린넨과 행주를 가져오는 모습은 각기 달라진다. 가방에 돌돌 만 린넨과 행주를 꺼내는 수강생, 호주머니에 꾸깃꾸깃 넣어 가져오는 수강생, 수업 후 빨지 않은 채 커피 얼룩과 물기가 그대로인 상태로 가져오는 수강생, 깨끗하게 빨아 비닐봉지에 넣어 오는 수강생. 수강생들에게는 시험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