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청소기 소리가 요란하다. 오랜만의 연휴라 가족들 모두 각자의 방을 정리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나 역시 이리저리 펼쳐놓은 책들이 가득한 책상을 내려다본다. 이틀째 그대로인 책 페이지며, 먼지가 내려앉아 걸레질을 해야 할 것 같은 탁상시계와 안경. 먹다 남은 커피.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지웠는지 하얀 책상 위에 뿌려진 지우개 조각들까지. 정리하지 않고 내버려둔 책상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근 여러 일로 머릿속이 복잡했었다. 그런데 덩달아 지저분한 책상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짜증 어린 감정이 올라왔다. ‘마치 정리되지 못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불편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내 나는 창문을 열고, 걸레를 챙겨 책상과 선반을 닦기 시작했다. 읽기 위해 꺼내 두었지만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책들은 책장으로, 흩어져 있던 물건들은 서랍 속으로 정리했다. 남겨진 책들은 크기별로, 자주 보아야 하는 순으로 두고, 마지막으로 볼펜꽂이에서 잘 나오지 않는 볼펜들을 하나씩 살폈다. 책상을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버려야 할 물건들이 많았다
일본 영화 “PLAN 75”를 보았다. 75세 이상의 성인이 스스로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된 가까운 미래 일본을 무대로 자기 삶의 행방에 고민하는 고령자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뉴욕의 미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2008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당시 일본에 자기 책임론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풍조가 해마다 심해져 살기 힘들다고 느끼던 차에 2016년 일본 사가미하라에 있던 장애인 시설에서 간호하던 남성이 시설 안에 서 살고 있던 장애인들을 죽인 사건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회에 만연한 비관용적 분위기에 대한 분노'가 창작의 동기가 되었다고 하며, '가치 있는 생명'과 '가치 없는 생명'이라는 구별으로 인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진 사회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영화로 물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75세 이상의 노인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설정이다. 이런 일은 영화의 세계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지, 아무리 초고령화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월말이면 커피 쿠폰 도착을 알리는 문자가 온다. 유일하게 참여하는 ‘매일 독서 30분’ 챌린지에서 매달 완주자에게 선물로 지급하는 것이다. 책 읽기 습관을 들여볼 생각으로 월 회비 5천 원에 자발적으로 참여를 했다. 덕분에 매일 30분이라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한데, 선물까지 받으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매달 느낀다. 이런 선물이라면 누구든 받고 싶지 않을까? 요즘은 감사한 마음,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방법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가장 획기적인 건 속도가 아닐까 한다. 몇 번의 손놀림으로 어느새 누군가에게 쿠폰이라는 형태로 선물이 도착해 있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가끔 소포 상자를 들고 우체국을 드나들던 아날로그 시대의 정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가 선물과 편지지를 고르는 시간을 즐기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된 듯하다. 벌써 30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으려나.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종이 신문이 보편적이던 시절. 결혼을 앞둔 지인에게 어느 해 보다 의미 있는 생일 선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엉뚱한 선물
타닥타닥, 우산으로 떨어지는 비가 소리를 낸다. 버스를 타려다 좀 걸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었는데, 이게 웬걸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의 비 소식을 접해서인지 주변 사람들 모두 나처럼 우산을 준비해 온 것 같다.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는 비가 오는 것이 싫은지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우. 왜 이렇게 비는 많이 오는지.” 중얼거리는 사람의 혼잣말을 듣고 있자니 나의 마음이 스친다. ‘나는 어떻지?’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바지 끝이 모두 젖어 번거로운 상황이 되었지만,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소리 덕분에 개운함이 밀려오는 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일상에서 종종 이런 일들이 있다. 상황이 불편하게 느껴지면 계속적으로 불편하게 보이는 사각의 프레임 같은 일들 말이다. 프레임은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사고방식의 틀을 말한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사건의 해석은 달라지지만 한 번 인식되거나 각인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일부러라도 부정적으로 흘러가려는 생각의 틀을 바꾸어줄 필요성이 있다. 상황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이 나쁘게 느껴질 때, 억지로라도 긍정적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다. 오늘 내린 비에
'어떤 방패도 뚫는 창'과 '어떤 방패도 막는 방패'를 팔던 초나라 손님이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묻자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비자"에 나오는 고사이며 모순(矛盾)이라는 말의 유래다. 만약 창이 방패를 관통한다면 '어떤 창도 막는 방패'는 잘못된 것이다. 만약 뚫을 수 없다면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방패'는 거짓이다. 따라서 어느 쪽을 긍정해도 상인은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갑자기 모순의 어원 이야기를 한 이유는 요즘 자기계발과 행복, 마인드풀니스에 관한 책을 읽으며 이렇게 모순이 될지 고민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자기계발에 관한 책도 많이 출판되고 있다. 그 안에 공통적으로 쓰인 내용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목표를 실천할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도 한다. 한편,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는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라는 개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의 사건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재
봄비가 보슬보슬 내리던 날. 서로 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 점심 한 끼 하기도 쉽지 않은 친구와 급하게 약속이 잡혔다. 지나가는 길에 잠시 시간을 낸 것이라 만나기 바쁘게 식당으로 향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낮술을 부른다. 가볍게 막걸리 한 잔씩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얘기 중 친구가 지나가듯 하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 잘살아온 거 같지?” “그럼, 너도, 나도 잘살았지. 훌륭해!” 막걸리가 넘칠 듯 찰랑거리는 잔이 유쾌하게 부딪치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어쩐지 들떠 보인다. “우리 잘살았다.”라는 한 마디가 주는 여운은 길었다. 살아온 지난 시간을 온전히 인정받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수많은 일을 “왜 내게만?”, “왜 지금?”이란 말로 부정하고 저항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살면서 현재 겪는 일들은 좋은 일과 나쁜 일로 단정 지을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란 고사성어가 얘기해주듯이, 지금은 나쁜 일인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일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새로운 기회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삶이 내게 주는 교훈을 깨닫는 그때부터 나는 사정없이 흔들릴지라도 뿌리째 뽑히지는 않는다. 당신은 잘살았다고 말할 수
출근길, 앞서 길을 걷던 한 중년 여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길 옆 화단을 유심히 바라본다. 잠시 뒤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를 찾는 듯 더 유심히 화단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다 이제는 주저앉아 초록빛 풀 사이로 손을 넣어 이리저리 흔든다. 풀 사이로 몇 번의 반복된 행동을 하다가 아쉬운 듯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다. 며칠 전, 한 중년 남성도 허리를 굽혀 무엇인가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오늘도 비슷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궁금해졌다. ‘대체, 화단에 뭐가 있어 저렇게 유심히 보는 걸까?’ 여성이 있던 자리에 나도 멈춰 서서 화단을 바라본다. ‘아. 이거였구나!’ 한 번쯤 사람들을 멈추게 했던 그곳에는 수많은 세잎클로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토끼풀이라고 불리는 클로버는 초록빛 잎 사이로 하얀 꽃이 함께 피어 있었다. 아마도 이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사람들은 행운의 상징인 네잎클로버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 수많은 클로버들 사이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으려고 한참이나 헤맸던 적이 있었다. 오랜 시간을 찾아도 보이지 않던 것이 아주 우연하게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순간의 기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세잎클로버는 행복을, 네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