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의 가치는 그것을 마시며 나누는 대화에서 비롯된다 – 데이비드 린치 -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다보면 오고가는 말의 온도에서 나와 결이 맞는지 알 수 있다. 커피도 그러하다.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넣으면 나와 결이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다. 산미가 있어 나와는 결이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커피, 쓴맛이 강해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커피. 오늘은 커피의 결을, 나에게 맞추는 레시피를 배우는 브루잉 수업이 있는 날이다. 내리쬐는 햇볕과 열기로 가득 찬 길을 가로질러 양손에 원두 박스를 들고 학원 본관 건물에서 별관으로 이동한다. 브루잉 수업에 필요한 기물들을 준비해 놓고, 에어컨의 온도를 확인하고 수강생들을 기다리며 오늘 브루잉 수업엔 어떤 원두를 사용할까 살펴본다. 박스 안에 로스팅 일자, 생산지역, 가공방식, 배전도가 적혀있는 원두 봉투들을 보니 ‘오늘은 인도네시아로 커피 여행을 떠나 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수업 시간이 되고 수강생들과 인사를 나눈 후 물줄기 연습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조용한 강의실은 드리퍼 안에 닿는 물 소리, 서버를 통해 흐르는 물소리로 작은 개울들이 생긴 듯하다. 10분쯤 지나니 “선생님, 힘들어
몇 년 동안 책을 헤어진 연인처럼 잊고 산 적이 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아련한 추억에 몸살을 하다가 선뜻 다시 만날 마음은 쉽게 낼 수 없는 그런 관계처럼. 한때 책이라면 밤을 새워 읽고, 월급날 서점 가는 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람이 내가 맞나 할 정도의 변심이다. 책을 읽는 것도 습관이고, 읽지 않는 것도 습관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는 게 힘들고 바빠 시간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핑계일 뿐인데, 너무 오랫동안 내 행동을 합리화시키는 이유로 잘 써먹었다. 그냥 읽지 않는 게 편했을 뿐이다. 한 번 몸에 익은 편안함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게으른 자의 핑계 “내일부터는 꼭”으로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다. “책 읽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읽을 수밖에 없는 무슨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당시 문화센터에서 보드게임을 배우는 중이었는데, 선생님이 뜻밖의 제안을 한다. “선생님, 저 독서 모임 만들건대 같이 할래요?” “어머, 좋아요. 함께 해요.” “매주 토요일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데 올 수 있을까요?” “그럼요. 가야죠.” 그렇게 나는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놓
“삶이 크게 의미가 있지가 않아요. 이대로 죽어도 그냥 뭐. 괜찮을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중년의 한 남성을 마주하고 있다.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내는 암 선고를 받고 누워 있다고 했다. “앞으로 즐기면서 살기로 했는데. 날벼락 같은 일이었어요. 병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아내를 보자니 인생이 허무하게만 느껴지는군요.”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잠시 들른 병실 로비에서 눈빛에 초점을 잃은 채 이야기를 하는 이름 모를 어르신에게 그렇다 할 위로의 말을 건네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집으로 오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내의 병환 앞에 허무함을 읊어대는 남성을 보고 있자니, 저 마음은 어떠할까 생각하게 된다. 함께 하자 약속했던 것들을 함께 할 수 없는 순간이 올 때, 삶의 시계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더 낫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의 언어는 어쩌면 반어적인 표현이 아닐까 싶다. 삶의 무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쇼펜하우어도 이런 말을 했다. “죽도록 잘 살고 싶어서,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그리고 “누구나 내일이 오지 않길. 한 번 이상은
언제부터 거리에서 공중전화를 볼 수 없게 된 걸까. 가끔씩 공중전화 박스를 보기도 하지만 안에 전화기는 없다. 어린 시절, 공중전화는 급한 일이 있을 때 혹은 가족 중 누군가가 집 전화를 사용하고 있을 때 이용하는 편리한 도구였다. 이제는 그런 제한이 없다. 각자가 휴대전화를 가져 다니고 있다. 와이파이만 있으면 앱을 이용해 저렴한 가격에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원하는 상대와 원하는 대로 대화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 자유의 대가로 무엇을 잃었을까? 사람들은 원할 때 전화를 걸면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고, 인내심을 잃은 것 같다. 우리는 더욱 빠른 의사결정을 요구받았고,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빼앗겼다. 조선 중기의 시인, 기녀, 작가, 서예가, 음악가, 무희였던 황진이는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남성의 방문을 기다리며 나뭇잎이 흩어지는 소리조차 그 사람이 오는 발자국 소리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시로 읊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대이기에 사랑은 더욱 불타오르고, 답답한 마음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동시에 기다리는 마음은 인내심을 키웠고, 또 아름다운 문학 작품을 탄생시켰다. 만
아메리카노와 라떼 밖에 모르며, 커피를 시작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글쓰기를 시작한 나. 그런 나의 도전을 기꺼이 도와주시겠다고 손을 잡아주신 스승님이 계신다. 책 읽을 시간도 없이 하루를 사는 나에게 글쓰기는 무모한 도전이었을까? 자신감으로 채워진 글을 쓰고자 생각했던 처음 마음, 그 마음은 시간이 갈수록 일상생활에 치여 점점 힘을 잃어간다. 그런 제자를 말없이 지켜보시며 힘을 내라고 선물을 보내주신 분, 그리고 칼럼니스트가 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도 해주시는 스승님.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나에게 던져주신 그분의 질문이다. 세상 살면서 쉬운 일이 뭐가 있을까? 제일 잘하는 일이 뭔가? 그 질문에 나는 커피 공부를 했던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커피 공부하면서 쉬운 게 뭐였을까?, 제일 잘 하는 게 뭘까?’ 여전히 쉬운 것 없고, 잘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게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는 나를 가만히 살펴본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작동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고, 컵 안에 하얀 하트를 띄우는 것도 어려웠다. 커피의 향미를 제대로 느끼고 말로 표현하는 것, 생두가 가진 향미를 로스팅으로 살려내는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로 생각될 때도 있었다. 열기가 느껴지는 덩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 16년을 살고 열일곱이 되던 해 이른 봄, 나는 고향을 떠났다.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 아버지는 광산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책임지셨던 엄마는 바깥 활동이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셨고, 나의 일반 고등학교 진학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이 일반 고등학교 진학 준비로 들떠 있을 때, 나는 경북 구미의 모 회사에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갔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공장을 다니면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산업체 고등학교라는 제도가 있던 시절이라 가능한 이야기다. 그 시절엔 그것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다. 얼마 후, 나는 엄마 품을 떠나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 가장 느린 기차였던 ‘비둘기호’를 타고 새로운 세계로 등 떠밀리듯 나아갔다. 내가 입사한 곳은 회사 내에 고등학교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다른 아이들보다 환경이 좋았던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공장은 공장이었고 아직 산업현장에서 3교대 근무를 하며 공부를 한다는 것은 10대의 어린 나에겐 너무나 버거웠다. 앞으로 이것이 내 생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았던지 어디에도 마음
눈이 시리도록 푸른, 초록빛 벼가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다. 사락사락.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벼의 끝자락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더운 날씨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초록 벼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에 청량감이 묻어난다. 몇 해 만에 찾은 시골 풍경은 언제나 한결같다. 자연의 모습을 통해 계절의 소식을 전하고, 도시보다는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로 차분함을 선사한다. 적어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그러하다. 복잡하고 부산스러운 마음이 시골집 풍경 속에 있으면 어느 순간 가라앉게 되니 말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어느 봉사자가 와서 그려놓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벽마다 그려진 꽃들의 소박함에 슬며시 웃어본다. 어린 시절, 시골을 찾으면 집집마다 들러 안부를 묻곤 했는데 이제는 그 시절의 어르신들은 이곳에 없다. 점점 더 한적하게 변해가는 시골의 모습, 주인은 없지만 그대로 남겨진 집터를 보고 있자니 아쉬움이 몰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 덕분에 생기를 더해가고 있음에 어딘지 모를 안도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찾아올 수 있는 자연 속의 공간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여유를 즐기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관심사가 아닐까? 글에는 내용을 전하고자 하는 자와 그 정보를 받는 자가 반드시 있고, 특히 정보성이 있는 글에 대해서는 타겟으로 되는 자에게 도움이 되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나도 대상자들의 고민에 답을 주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내가 전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내용을 나보다 정확히 표현하는 분이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면 어조가 생각보다 더 조용한 사실을 알게 된다. 일상생활에서 대화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르쳐 줄게” 라는 방식으로 상대방이 이야기한다면 듣는 사람은 쉽게 그 내용을 받아드릴까? 예를 들어 아이를 생각하는 나머지 이것저것 조언했는데 아이에게 거부당했다는 경험을 갖고 있는 부모들은 나만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내용이 좋다고 해도 강요하는 태도라면 조언을 거부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 반대로 상대방이 조언이 아니라 자기 경험담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때, 오히려 더 쉽게 깨달음을 얻을 경우가 많지 않을까? 강원국 작가의 조언이다. 글은 독자와의 대화이며, 말을 하고 글을 쓸 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내용과 상대가 듣고 싶은 내용 사이에서
“강사님은 커피 매일 드시는데 괜찮으세요?” 수업하다 보면 수강생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다. 카페인에 민감해 커피를 마시면 잠 못 자는 사람, 바로 나다. 그런 내가 커피를 가르치는 일을 하니 괜찮을 리 만무하다. 특히 브루잉 수업과 센서리 수업을 하면 하루에 마시게 되는 커피의 양이 4잔 이상이 된다. 브루잉 수업에서는 수강생들이 추출한 커피 맛을 보면서 레시피 수정을 도와줘야 해서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된다. 센서리 수업은 수강생들이 느끼는 커피의 향미, 내가 느끼는 커피의 향미를 서로 조율을 해가며 객관화를 시키는 과정을 거쳐야해 다른 수업들보다 유독 커피를 많이 마신다. 그중 에스프레소 센서리를 수업하는 날은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카페인을 흡수한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그래서 그 날은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이루기 쉽지 않다. 수업이라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되지만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면 말 한마디로 카페인을 적게 섭취할 방법은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가 더 있다. 사람들은 흔히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어 희석한 아메리카노가, 핸드드립으로 추출한 커피가 카페인이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수업
새벽의 고요를 깨던 노트북의 키보드 소리가 처음과 다르게 점점 작아지더니 기어코 손이 멈춘다.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글이 전개되고 있어서이다. 어쩌면 두 개의 글로 분리해서 쓴다면 훨씬 매끄럽고 부드러운 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을 나누고, 각각의 글에 살을 붙이고, 모양을 내자 꽤 괜찮은 글로 완성된다. “언제 이렇게 글을 보는 눈과 써내는 힘이 생겼지?”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무언가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한다. 한동안 필요한 글만 썼던 시기가 있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것도 이유였겠지만 언제든 내가 원하는 글 정도는 거뜬하게 쓸 수 있겠지라는 자만심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글이 주는 느낌이 전체적으로 매끄럽지 않고 거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자신은 속일 수가 없는 일이다. 글 앞에서 머뭇거리기 시작했고 글 쓰는 일이 만만하지가 않고 불편했다. 그 마음을 깨달은 날부터 나는 마음에 드는 글 한 편을 쓰기 위한 보이지 않는 일을 시작했다. 마치 도도하고 우아해 보이는 백조가 물밑에서 부지런히 발을 동동거리는 것처럼. 나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한다.